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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니까요!

살아있어주기만 하면 돼요.

by 윤작가

"이거 사과다!"

하는 내 말에 "언니야, 그건 사과가 아니라 대추야."

동생이 답한다.

"대추가 이렇게 커?"

집으로 오는 길, 동생 차를 타고 가다 마주친 동네 풍경. 대추가 내 눈에는 사과로 보이고 싱그러워서 찰칵!


어머니와 동생의 동상이몽!

"엄마, 떡 먼저 넣지 마세요. 떡이 불어서 먹기가 그렇잖아요."

아침부터 청소하라는 언니 잔소리에 입이 튀어나온 동생이 아침으로 차린 어머니 밥상 앞에서 불평이 나온다.

오일장에서 동생이 사 온 어묵 넣은 어묵탕에 간편식으로 떡 넣어 차린 식탁. 어릴 때 동생은 라면에 계란 푸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매콤하고 칼칼한 본연의 국물을 선호하는 아이에게 불어 터진 떡은 식감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만드신 찬거리

"배가 불렀네. 나중에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누가 내 밥 좀 안 차려주나, 그런 생각하지도 마라. 어머니가 이렇게 차려주면 군말 않고 그저 감사하게 먹으면 되지 말이 많다. 세상에 누가 이렇게 차려줄 건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냥 먹어라~"


청소하라는 잔소리 1탄에 주는 대로 먹으라는 잔소리 2탄. 동생에게도 미안하긴 한데, 어머니가 민망할까 봐 맏이의 방탄 잔소리 발사!

독립성향 강한 동생과 달리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멘토 삼아 옆에서 다 보고 느끼며 자란 나는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 심정을 알기 때문에. 모녀가 비슷한 기질이라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어머니 보호가 우선이다.


자궁근종으로 음식 가려먹는 딸을 위해 예전과 달리 콩나물 반찬도 못하고 가지 껍질 벗겨 만든 가지나물과 비싼 바지락 넣은 된장찌개, 거기에도 가지가 들어간다. 금양체질에는 가지가 맞기 때문에. 계란 프라이는 오늘도 3인분. 그건 어머니 루틴 같은 습관이라 마음에 안 들어도 넘어간다.

"찍어라."

이제는 어머니가 자신의 음식을 두고 명령하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 같은 어머니 패턴 따라 나도 11시 전에 잠들어 7시 전후로 일어난다. 원래는 12시쯤 잠들어 8시에 일어나는데, 손가락 다친 어머니 목욕 도와드리고 집안일 거들다 보면 서로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든다.


'엄마의 밥상' 매거진에 지인이 사준 점심상 등장.

오늘은 얼마 전 교습소 개업한 지인과 만나 점심을 먹었다. 자궁근종으로 음식을 가려야 해서 고기와 밀가루를 못 먹는다고 하니, 교습소 근처 음식점에 해물 요리가 있단다.

내가 좋아하는 전복 들어간 전복장비빔밥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거의 먹을 수 있는 양배추와, 깻잎, 김 등의 식재료에 전복장 소스를 넣어 비벼 먹는 밥이 담백하고 고소해서 좋았다.

개업 축하 선물로 미리 보냈던 꽃이 교습소 한편에 시들어 있다. 지인의 영업장에 가서 콤부차 한 잔 얻어 마시며 아이들-지인은 아들, 나는 조카-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 학생이 들어와서 퇴장했다.


약속 장소에 가기 전 찍은 배롱나무가 아름다워 찰칵!

어머니 좋아하는 배롱나무도 여리하니 빛난다. 빛은 약간 바랬지만, 둥근 열매인지 꽃봉오리인지 모를 구슬(?)이 앙증맞고, 오늘 지인이 입고 나온 캉캉치마 같은 배롱나무 꽃잎이 찬란하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지인이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실랑이하느라 스트레스로 살도 찌고, 속상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아이에게 양가감정을 지니고 살 것이다. 한없이 사랑스럽고, 생명을 줘도 아깝지 않을 아이건만. 애먹일 때는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밉고 속을 들끓게 만드는 존재.


"물에 떨어지면 누군가 건지는 수고를 해야 하니, 죽으려면 약 먹고 죽어야지."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리틀 라이프>> 속 주드 이야기 꺼내며 트라우마 때문에 자해하고 자살할 정도로 외상이 심한 경우도 있다며, 예전과 달리 그 심리에 대해 조금 이해가 된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저렇게 말했다.

"나도 기찻길에 가서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애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견디자. 그러면 알아서 밥 먹고 살겠지 싶어서... 그런데 지금까지 왔다."

평생 노름꾼 생전 아버지로 어머니도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서 기찻길에 가서 서 있다 왔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다에 떨어지면 누군가는 시체를 건져야 하고 고생스러우니, 죽으려면 혼자서 약 먹고 죽어야지, 지나가는 말을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나 또한 죽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그러기에는 내 몸과 마음, 스스로를 사랑했다. 무엇보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을까 봐 그러지 않았고 가장 힘겨운 순간, 신을 만난 어린 시절의 신앙이 지금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노쇠해 가지만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곁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그녀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


"떡이 불어 터지든 어쩌든, 그저 살아계시니 황송하고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나의 천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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