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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말고, 한 번에 하나씩

"하나만 먹어봐!"

by 윤작가

"아이를 갖기 전에는 두려움을 모르지. 어쩌면 그래서 그게 더 굉장한 거라고 착각하게 되는지도 몰라. 두려움 자체가 더 굉장한 거니까. 매일매일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얘를 정말 사랑해"가 아니라 "애는 괜찮나?"야. 세상이 하룻밤 사이에 공포의 장애물 경주로 바뀌지."

- 한야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 중에서


원형 경기장 같은 바가지에 반죽 풀어 김치전 하는 어머니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느끼는 예술성을?'

이런 생각이 드는 사진이다. 민트색 바가지는 수면에 이는 물결 같은 무늬를 그린다. 잘린 파와 밀가루, 김치 국물 등이 적절히 조합된 반죽의 질감. 거기에 툭 얹어진 나무 숟가락! 이 모든 게 그냥 일상이 아닌 예술로 보이는 내가 이상할까?

아무렴 어때, 그녀의 말대로 작가 마음이지.

"어머니, 이번에는 '하나만 먹어라'로 글 적을까요?"라고 물으니 작가 마음이란다. 어머니 말이 맞다, 쓰는 이 마음이다.


"찍어라!", "네!"

어머니는 아침부터 반찬 세 가지 뚝딱 완성. 제일 먼저 가지를 굽는다. 소금 한 꼬집 뿌린 후 프라이팬에 달달 볶는다. 제철이라 가지가 튼실하고 좋다 하신다.

"하나만 먹어봐라."

자궁근종으로 8 체질 검사 후 건강 관리하는 금양체질 맏이에게 밀가루가 든 음식이라 맛만 보라는 뜻이다. 평소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지만, 이럴 때는 보란 듯이 잘 됐다고 마음껏 맛본다. 맛있다, 당연히!

외할머니가 쓰던 채반을 어머니가 요긴하게 쓴다. 자신의 어머니 손길 묻은 유산인 양 알뜰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애잔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어제 오일장에서 동생이 사 온 어묵에 간장과 양념 넣어 만든 어묵 조림. 요리사는 어머니라 마법(?) 비법 모름.

가지와 두부 구이에 이어 김치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묵 조림까지. 어머니와 딸의 차이는 뭘까? 이번에 어머니가 손가락 부상을 당해 모든 설거지를 하면서, 보조로 부엌일 거들면서 알게 된 사실은 존재에 대한 터득이었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얼마나 깊고 무서운 것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알아야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데, 알아 더 무섭고 두렵기도 하다. 지금 읽고 있는 <<리틀 라이프>>에서 주드의 멘토 격인 해럴드가 결혼해서 뜻하지(?) 않은 아이가 생기자 알게 된 진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대목에서 어머니가 연상되었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두려움을 모르지." 이 문장이 부모님의 책임감과 막중함이 어떤지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숙제를 안 해 화장실에 갇히는 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어서 평소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딸이 걱정된 어머니는 맨발로 뛰쳐나갔다. 헐레벌떡 학교로 뛰어온 어머니 소식에 친구가 화장실에 와서 급히 "선생님이 이제 됐대, 그만 오래."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예쁘장한 얼굴에 작은 키였으나 단호한 면이 있었다. 숙제를 안 해오면 안 된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할 참이었는데, 의도와 달리 돌아가는 분위기는 심각했다.


딸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어머니의 발. 얼마나 급했으면, 마치 딸이 유괴라도 당한 줄 아셨는지...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15분 이상 걸리는 거리인데 그 거리를 맨발로 뛰어오다니. 그 일 이후, 담임선생님은 화장실에 벌세우는 일은 절대 시키지 않았다. 아무튼 부모에게 자식이란 존재는 자신은 잊고 모든 걸 다해 지키고 싶은 우주인 것이다. 그래서 산모는 임신 여부를 안 다음부터 극도로 조심하게 된다. 입덧을 하고 입원도 하고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하고, 심한 경우 임신 중독증에 걸려 고생하기도 한다. 한두 달도 아닌 10개월 동안 아이를 품고 바로 누워서 잠도 못 자는 지경까지 간다. 온몸에 늘어난 살로 인한 흔적이 생긴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도 인간이란 존재를 독립시키기 위해 거의 20년 가까운 시절, 요즘은 평생이 걸릴지도 모를 일을 감내해야 한다.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


김치전 삼총사!

같은 여자로서 어머니의 삶을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인간으로서 여성이란 누구이며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도 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오래된 프라이팬처럼 자신이 낡고 약해져도, 죽어서도 엄마일 그들은 참으로 거룩한 존재 그 이상이다.

"약 사 왔다. 이 약이 잘 듣는다."

원래의 몸무게-7kg 빠진 상태-로 돌아온 탓일까? 기후 위기로 이번 여름 에어컨을 내내 튼 탓일까? 몸의 수분이 바싹 말라 지복합성 피부에 주름이 지려하고 피부가 메말라 가는 게 눈으로 보인다.

비건 바디로션과 어머니 로션과 내가 쓸 크림을 구매한 후, 잘 마시지 않는 물을 조금 더 마시는 중이다. 전에 사뒀던 히알롤루산 든 '이너뷰티' 제품을 한 알씩 다시 먹으면서 애쓰고 있다.


이제 애써야 하는구나, 많이 애써야 겨우 진정되네. 어머니만큼 딸도 나이 들어간다. 어머니는 어머니라서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다리에 붉은 점처럼 생긴 딱지를 만든 딸의 피부에 직접 연고를 발라준다. 어린아이가 된 느낌. 기분이 좋다! 유치원에 가기 전 세숫대야를 방까지 들고 와서 얼굴 닦이고 머리 빗겨서 버스 있는 곳까지 손잡고 마구 뛰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 아직도 어머니에게 딸은 두려움일 것이다. 잘못될까, 탈이 날까, 아플까, 속상할까, 수없이 기색 살피며 조금이라도 손에 물 안 가게 하려고 온몸으로 희생하는 그런 우주일 것이다.


어머니의 모든 것은 다 예술성 짙은 명작!

어머니의 손가락은 시꺼멓게 변했다. 새 손톱이 다 나오려면 언제가 될지 신만 아시겠지. 그때까지 어머니 목욕을 도와드릴 것이고, 설거지를 도맡아 할 것이다. 요리는 어머니 담당이라 이제 조금 한숨 놓은 나는 멍하니, 어머니를 도울 생각보다 가만히 있을 때가 더 많다.

사랑한다는 것은 단번에 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기에 십자가에서 단번에 죄인을 담당할 어린양이 못 된다. 우리는 한 번에 하나씩 행하며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신 같은 존재인 어머니여, 당신의 모든 것이 거룩합니다. 내리사랑이라 아무리 해도 어머니 경지는 감히 좇아갈 수 없어, 그저 당신이 행한 것들을 잊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이 글을 쓰는 중이에요.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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