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 것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자, 어쨌거나 자기가 부모님을 사랑했다는 게 기억났다. 부모님은 그에게 요긴한 지식들을 가르쳐줬고, 그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들을 한 번도 요구한 적 없었다."
- 한야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 중에서
어머니의 손가락 부상 이후 집안일을 예전보다 더 거들면서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보이지 않는 궂은 곳까지 신경 쓴 그녀의 흔적들. 밥상보를 여니, 유부초밥과 된장찌개, 양배추 생채, 계란 프라이,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 숙회까지 한 상이다.
5년 전 맹장 터져 천공 포함한 복막염으로 긴급 수술받을 때 발견한 자궁근종. 제일 큰 것은 제거했지만, 그 후 또 생겨 추적 관찰 중이다. 호르몬약을 2년 정도 먹다 중단했는데, 2개월 전부터 다시 먹는다. 지난번과 달리 혈액이 도는 부위 따라 발목, 다리, 무릎 뒤, 팔꿈치 주변 등에 가려움이 나타났다. 코로나 2차 백신 후에도 가려움이 있었는데, 면역 질환인가 싶지만, 올초 8 체질 검사 이후 철저한 식단 조절로 왼쪽 난소에 있는 혹은 사라졌고 기존에 있던 근종은 크기가 조금 줄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약을 중단해야겠어요. 이러다가 피부가 엉망 되겠어요."
24시간 가려운 건 아니고 잠도 자지만, 한 부위가 슬슬 가려우면 견디기 힘들다. 손을 대면 빨개질 때까지 긁다 피까지 난다. 지난번에는 8 체질 검사 전이라 가끔 두통이 있고 속이 메스꺼워서 초콜릿 과자 포함 간식을 자주 먹어 살이 많이 쪘다.
8 체질 식단 관리 후 몸무게는 거의 7kg이 서서히 빠졌고, 예전과 달리 아파 보이거나 불쌍해(?) 보이지 않는다. 근력 아닌 지방이 빠져 고질적인 뱃살도 많이 들어갔다.
대장에 열이 많은 체질이라서 차가운 성질을 지닌 식재료를 써야 이롭단다. 좋아하던 과일도, 흔하게 먹던 라면과 과자도 다 끊었다. 약간 범생 스타일이라 안 해야 하는 것을 끊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그러면서 아직 SNS 중독은 못 고쳤다. 어머니도 딸의 체질에 맞는 음식만 사고 요리하느라 답답하실 텐데 안 좋은 말은 하지 않으신다. 지난달 지인이 같이 읽자고 선물해 준 소설 <<리틀 라이프>>에 나오는 인물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들의 마음에 대해 되돌아본다. 그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자 나이가 들어야만 볼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평생 씻어달라고 하면 어쩌려고?"
어제 어머니 목욕을 도와드리니 미안한지 그리 말씀하신다.
"그럼 평생 씻기면 되죠, 그게 무슨 문제예요?"
실제로는 그럴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너무 이기적이지 못해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 딸인 나도 웬만한 이야기는 어머니께 다 털어놓아도 진짜 안 좋은 이야기는 신 이외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은 온전히 믿기에는 너무 연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라서.
잘 먹고 잘 산다. 빚은 있고 돈은 부족해도 잘 먹고 잘 사는 중이다. 다 어머니 덕분이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월급이 얼마냐, 봉급이 올랐느냐 같은 질문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아프면 쉬라고 하고, 학원이 망해 문 닫아 실업자가 되어도 속으로는 걱정하셔도 내색 않고 괜찮다 하신다. 애들이 많이 없어 돈이 작아요, 하면 언젠가는 잘 되겠지 하신다. 그런 어머니다. 그래서 가장 힘들 때 저절로 생각나는 얼굴이고, 연약한 뼈대로 태어났지만 맹장 수술 이외 다른 수술을 하지 않고 살 정도로 일상의 보살핌을 많이 받은 행운아다. 그것을 알면서도 어머니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기고 하고, 때로 폰 보면서 어머니 말에 온전히 집중 못하는 불효녀다. 이런 딸인데도 조금만 잘해도, "우리 새끼, 잘하네!" 하는 어머니. 오죽하면 이 매거진까지 만들었을까?
테라스에서 키우는 관상용 고추나무, 애정이! 어머니 끝 자 따라 이름 짓고, 날마다 쳐다본다. 수많은 꽃이 피고 지는 어느 날, 꽃 진 자리에 동그란 초록빛이 보이더니 고추 형태를 띠고 날마다 자란다. 기특한 우리 애정이!
자식들 눈에 부족한 게 많아 보여도, 노쇠한 부모님 육신이 초라해 보여도 그들은 여전히 부모이고 어른이다. 세상에 단 하나, 자식 낳고 키우고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존재들이다.
나이 차이만큼, 부모님이 산 세월만큼 뒤쳐진 우리 자식들은 그분들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청춘이면 더하겠지.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고,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도 많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 자체로 부모인 그들에게 최고의 효도는 조금 더 부모답게 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튼 아직도 어머니께 할 말 다 하는-고부 사이 아니라 모녀 사이라서 가능할 수도-딸이지만 이렇게 조금씩 철들어가는 게 인생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