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떡볶이와 딸기는 덤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다 같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밥 먹는 걸 좋아한다. 대가족 속에서 자라 그런지 얌전한 막내였던 어머니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딸이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우리 심청이"라고 불렀다고. 외할머니는 술담배 좋아하는 남편에게 질려 장로 아들에게 딸을 시집보냈으나, 그 장로 아들이 지독한 노름꾼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돈은 안 벌고 거지나 데려와 자기 밥 주라던 대인배(?) 남편으로 고생도 많이 한 외할머니는 이웃집 양파밭에 품앗이하고 받은 돈으로 겨우 자식들을 먹여 살렸다. 손이 야무져서 어머니 어릴 때 외할머니가 직접 바느질해서 옷을 입혔다고 한다. 사랑받고 큰 사람이라 그런지, 애니어그램 배려형이라 그런지 어머니는 천사다.
"오늘 롯데마트 하니?"
어머니는 설을 앞두고 대목 장을 보려는 거다.
"아니요, 둘째 주 일요일은 쉬어요."
롯데마트 대신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본단다. 고기와 명태, 딸기를 사 온 어머니. 사진 찍으니,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거 찍어 뭐 하려고? 못 먹는 사람 부럽게, 그런 거 올리지 마라."
자랑하려고 찍는 거 아니에요. 일상 기록용이에요. 평소에 못 먹으니 보기만 해도 좋고 풍성해서 찍는 거다. 신유형대가족이라 딸기 한 팩을 사도 반으로 나눠 동생네 주고 씻은 딸기를 식탁에 올리면 막내 조카가 서너 개 금세 해치운다. 어머니는 씻을 때 한 번 맛보면 끝. 이모는 서너 개. 조카는 더 많이. 나이가 아래일수록 더 많이 먹는다. 어른의 특징은 양보인지도 모르겠다. 한 팩 사도 한 끼에 다 없어지는 귀한 과일. 그래도 동생 친구가 선물해 준 홍게 덕분에 온 식구가 한 자리에 앉았다.
나중에 검색하니 킹크랩, 대게, 홍게 순으로 가격이 비싸단다. 어느 가게에서 쪄서 포장해 온 홍게를 온 가족이 자리 차지하고 앉아 실컷 맛본다. 가위를 여러 개 사용해서 다리와 몸통을 자르고 기름진 하얀 부분은 덜어내고 살만 빼먹는다. 게 이야기 빼면 무슨 살인 스토리 같은데, 먹는 이야기이다. 적극적인 동생은 잘 먹지도 않고 다른 식구들 편하게 먹도록 가위질을 열심히 한다. 다 모이니 어머니 얼굴이 확 펴졌다. 어머니는 누군가를 먹이고 위로하고 세우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식구들이 모여서 밥 먹으면 그리 흐뭇해한다. 그게 뭐라고, 싶은 건 내 심정이다.
홍게 도착하기 전, 미리 해놓은 어머니표 국물 떡볶이도 한 그릇씩 뚝딱. 조카들이 좋아하는 로제 떡볶이나 엽떡은 맵기도 하고 뭔가 자극적이어서 내 스타일이 아니다. 건강을 위해 떡볶이도 자제해야 하지만, 이런 날은 일탈 그 자체. 동생과 막내 조카 요청에 따라 하나 남은, 매운맛 진라면에 홍게 다리를 잔뜩 넣어 해물탕면을 끓였다.
"남은 국물 아깝다. 내일 아침에 밥 말아먹어야지."
어머니는 어제 먹고 남은 홍게 해물탕면을 오늘 아침상에 국 삼아 내놓고 한 끼 해결.
사는 것은 먹는 일의 연속이다. 고단하여 코 골고 잠든 어머니가 애처롭기도 하고 너무 감사하여 이 행복이 오랫동안 계속되길 속으로 빌기도 한다.
늘 다리 아프고, 팔 아프고, 어깨 아파서 이제는 사 먹어야지, 못한다 하면서도 명절 앞두고 미리 장보고 음식 할 생각으로 가득 찬 어머니. 국물떡볶이와 딸기는 산해진미와 비교할 수 없는 천상의 음식이다.
겨울이다. 입춘은 지났지만, 아직 날씨는 매섭다. 이 겨울, 축 처져있지 말고 자신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잘 먹고 쉬면서 봄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머니와 지인 덕분에 한 끼 잘 먹고, 먼 훗날 이들이 없는 세상에서도 이 역사는 남을 것이기에 오늘도 이곳에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