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키지 않는다, 좀 나가줄래?
어느 작가님이 추천한 윤도현의 노래를 들으며 퇴근 준비.
오늘은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무사히 왔건만. 주문한 책은 택배 박스에 담겨 고이 현관 한쪽에 세워져 있고. 불을 켜고 텀블러를 싱크대에 갖다 두려는 순간,
"아~놔, 진짜!!!"
허락도 없이 또 들어와 있다. 언제부터인지 징글징글하다. 날씨가 더워진 탓일까, 요즘 들어 그놈 흔적이 잦다. 내 눈에 띈 게 도대체 몇 번째야? 하.. 진짜, 신경 쓰이게 하네.
동작은 또 어찌나 빠른지 인사도 없이 스스슥, 가스레인지 뒤로 사라진다. 이거, 한 번 해보자는 거네? 잡을 기운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청양 고추 쫑쫑 썰어 칼칼한 국물맛 우려내 정성껏 준비해서 먹으려고 했더니, 입맛이 싹 달아난다. 그래도 배는 고프고.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도전.
그래, 너도 살아야지. 살고 싶겠지. 그래도 일용할 양식은 너랑 못 나눠먹겠다. 그냥 조용히 나가라. 어떻게 나가는지는 네가 더 잘 알 테고. 내 눈에 띄면 바로 죽음이다.
많이 대범해졌다. 아니, 대범해지는 수밖에. 그놈 잡는 일도, 뒤처리도 내가 해야지, 해줄 사람이 있나? 그래도 찜찜해서 최대한 가스레인지와 거리를 멀찍이 두고 냄비에 물을 붓는다.
아, 또 물 조절 실패. 한가득이야. 이미 널 본 순간부터 저녁상 차리기는 실패야. 대충대충 면 넣고 건더기 수프, 분말 수프 넣고 계란 넣고. 가위로 고추 대강 몇 조각 썰어 넣는다.
그리고 이 글 쓴다. 라면은 대기조다. 낭만이고 뭐고 너 때문에 내가 이게 뭐니? 주거침입죄, 마음대로 우리 집 돌아다니며 휘젓은 죄, 어쩔 거야?
"지도 먹은 게 있어야 크지."
조그맣다는 말에 하시는 어머니 말씀. 참 정도 많으시다 싶다.
살생은 싫은데 너랑 동거는 정말 싫거든. 제발 좀 오지 마라.
이 놈의 바퀴는 어찌하면 좋을꼬!!!
나는 청록색 화장실 휴지로
놈을 집은 뒤
변기 물에 띄워
보내버렸다, 이럴 수밖에
다른 대안은 없다, 할리우드와
서부극 관련자를 제외한
나머지 우리들은 계속
이래야만 한다.
언젠가는 그들이 자기네 종족이
지구를 접속하겠다고
선포할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단 몇 달이라도
그날을 지연시킬 것이다.
I picked him up with
some greenblue toilet
paper and flushed him
away. that’s all there
was to that, except
around Hollywood and
Western we have to
keep doing it.
they say some day that
tribe is going to
inherit the earth
but we’re going to
make them wait a
few months.
- 찰스 부코스키, <바퀴벌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