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주는 교훈

좁은 길이란

by 윤작가

한 마리 잡고 나면 이제는 그만하겠지, 이제는 없겠지 마음이 놓이기도. 그런데 하루도 안 지나간다. 어느 나라 대통령의 선언-테러?와의 전쟁, 그 덕에 벌집 쑤시듯 벌어졌던 무차별성 폭격과 희생까지-대로 나도 그 놈과의 전쟁을 해버려야 하는지, 아니면 받아들임의 자세로 멘탈을 더 단련시켜야 하는 건지.


몇 년 전 냉장고에서 물이 질질 세고 냉장까지 맛이 간 때도 여름이었다. 나는 사계절 중 여름 향기를 상당히 좋아하는 축에 속했었는데., 싱그러운 초록잎들. 달빛에 비치는 풍경들. 바람에 실려오는 풀향기. 새하얀 치자꽃에서 솔솔 나오는 꽃향기는 얼마나 황홀한지. 그런 여름이었건만 요즘 들어 생각이 바뀌고 있다.


김치마저 시어터지면 더 이상 답도 없다고 결론내린 엄마와 나는 목돈 들어갈 일에 걱정이 한가득. 아는 선생님과 전자 제품 코너에 들려 살펴봐도 도저히 돈 주고 살 게 없었다. 돈이 없었다.


어머니는 결단을 내리시고 집 근처 중고센터에서 현금 좀 얹어주고 5개월 카드 할부로 총 25?만원쯤인 냉장고를 사가지고 오셨다. 은색 메틸 칼라에 따로 물 꺼내는 곳도 있고, 양옆으로 냉동ㆍ냉장 나눠진, 어느 신혼 부부가 팔았다던. 손바닥만한 붉은 대왕 장미 스티커가 붙여진 꽤 괜찮은 녀석이었다.


그 녀석과 동행한 지 어언 3년쯤 되려나, 어느 순간 아이스크림이 안 어는 상태로 무심코 지나쳐왔는데, 제부가 안 됐던지 냉장고를 새로 사주었다. 물론 한없이 고맙지만 완전히 내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없이 살아도 스타일은 살아 있으니까.


아침부터 닦고 옮기고 교체 과정이 끝난 후 모든 게 안정되었나 싶을 찰나, 또 부스럭 뭔가가 움직이는 기색이. 미치겠네, 진짜!!!


조만간 방역 작업을 하자고 내 입에서 큰 소리가 튀어나갈 것 같다. 날도 후덥지근하고 곤충은 자꾸 출몰하고 내 정신은 괜찮았다 피폐해지기 직전. 농담 삼아 재미 삼아 글을 써도 내 기분은 시큰둥, 이거 어찌 해야할지.


"바퀴벌레가 자꾸 나와서 빵을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 꽁꽁 묶어서 침대 한쪽에 달아났어. 그럼 벌레들이 못 들어올 것 같아서.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 안에서..."


어느 선교사님이 동남아에서 겪었던 일을 말씀하신 게 스쳐간다.


'내가 언제부터 이리 폼 나는 거, 때깔나는 것만 찾았지. 내가 언제부터. 하나님, 이러다 제가 자꾸 편한 것만 찾고 좁은 길은 커녕 세상에 묻혀 당신의 색깔마저 잃어버리면 어쩌지요?'


나도 별 수가 없네. 이러고도 무슨 크리스챤이라고. 똑같이 힘든 거 싫어하고 똑같이 어려운 거 피하려 드는데, 그분 계신 곳이 천국이고 그분의 임재가 있는 곳에 감사와 은혜가 넘치는 말이 입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네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게 무어냐.


많이 게을러졌다.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우중충할수록 기분을 새롭게 해야겠다.


그래, 벌레 좀 나오면 어떠냐. 지도 생명이다, 결국 내 손에 죽겠지만. 날씨 좀 더우면 어떠니, 선풍기 틀 수 있잖아. 기분 좀 상하면 어때, 지천에 치자꽃이 날 보고 웃는다.


반대정신. 골고다 십자가는 아니어도 이 정도는 견딜 수, 감당할 수 있잖아. 차분히 생각해. 그래, 다시 또 한번 마음을 다지련다.


비가 잔뜩 올 것 같이 후덥지근하고 무거운 날씨다. 그래도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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