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운명을 믿나요?"
예전에는 기대한 바가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은 내가 사는 대로 운명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년이 온다>>를 반납하고 이 책을 골라든 건 솔직히 브런치 때문이다.
나는 그분이 내 글의 구독자가 되어주면서 처음 존재를 알았다. 평소 웹툰을 보지도 않을 뿐더러 사실 그림은 내게 첫사랑이자 부서진 꿈 같은 아픈 상처니까.
나뭇가지를 붙들고 모래밭에 아무렇게나 그려대던, 누워서 손가락으로 쉴 새 없이 천정에 그려대던, 방과후 연습장을 사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 시간에 한 권을 여자 그림으로 몽땅 채웠던 나였기에. 그저 내 달란트라고 의심할 바 없이 내 손이 보여준 일이었기에. 지금도 그림은 내게 특별하다.
큰 마음 먹고 디자인 학원에서 애니메이션 과정을 6개월 수료하고 여기선 더 이상 꿈을 이루기엔, 기초가, 나이가, 집안 형편이 받쳐주지 않는구나.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엔 돈 벌어 집에 보태야 하고 6개월 과정 수료한다고 그림에 대해 다 아는 것도 아니고 그 재료비는 또... 그렇게 내 인생에서 그림과 빠빠이를 하고 독한 마음으로 미련까지 끊어내 버렸다.
다시 학원에서 일을 하고 하루하루 지쳐갈 무렵 운명처럼 어느 책 속의 저자를 직접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나도 저자가 되어보자는 소망은 그 이전부터 서서히 싹트기 시작하던 터.
"왜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나요?"
"부자가 되고 싶어서요..."
나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빚은 다 갚아야 한다. 우리 엄마 책임지려면 빚이라도 없어야 저축도 하고 나이들수록 병원비도 늘어갈 텐데 언제까지 깡으로만 살 수도 없는 노릇.
워낙 고집세고 원칙주의에 이기적이고 싫은 꼴 안 봐야 마음 고생 안 하기에 결혼도 연애도 나 몰라라 하루하루 매꿔나갈 일상사에 늘 지치곤 했다. 유일한 낙이 독서이고 언젠간 대박나는 작가로 돈 걱정없이 사는 거. 엄마와 함께 예쁜 정원 있는, 바퀴씨 안 나오는 내 집에서 사는 거. 때로는 나그네 삶, 천국이 내 집인데 이렇게 위로하다가도 아니다 나 아니면 엄마와 나 어찌 될까라는 생각에 밤잠도 설친다.
그가 카투니스트였구나. 대학 교수시고 얼마 전 뉴욕에서 전시회도 가졌고 나랑은 생판 처음인데 브런치에서 라이킷 몇 번, 댓글 몇 번. 궁금했다. 카투니스트라? 어라, 책도 쓰셨네. 한번 읽어봐야겠네. 그리고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난 가난하므로, 그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책을 잘 빌려읽는 편.
그림과 글, 자신의 속생각을 써내려가셨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다. 청춘 때 쓰셨네. 지금도 청춘인가? 그리고 나의 꿈에 대해서도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열정을 품고 자신에게 도전하는 이들이 많다. 가난한다고 꿈까지 가난하겠는가.
나의 성정에 요즘 브런치도 시들이다. 읽고 댓글 달고 라이킷 하고. 또 쓰고 읽고 댓글 달고 라이킷 하고. 나란 인간은 뭐 특출난 것도 아닌 주제에 쉬이 꺼지는 건지. 대체, 에너지가 있기나 한지. 내향성이라 외부로 향하는 힘이 부족한 건지. 이러다 그나마 댓글 남겨 주시던 분을 비록하여 구독자분들도 다 지나가겠지 싶고.
그래도 나는 이제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내게 더 집중해서 결심한 일을 완성하고 싶다. 내가 너무 비참해질까봐, 너무 처량해질까봐 스스로에게 선물을 안겨주고 싶다.
백 권의 책을 쓴다고 고민이 없을까? 고민이 없는 이가 있나. 지금 나는 기운이 딸린다. 밖으로 나갈 에너지가 없다. 지금은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얘기할 힘이 없다. 당분간 이 곳도 잠잠할지 장담할 수 없다. 지금은 다른 곳에 전할 기운이 없다.
"불쌍히 여기소서."
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다구요? 아니요, 저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여유가 없어요. 누구 탓이 아닌 제 부족함이라 여깁니다. 저란 인간은 지멋대로거든요.
예배를 드리고 버스를 타려는데 보기 싫은 두 사람.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주님 앞에, 그냥 죄송합니다는 심정으로 저주 대신 축복의 기도를 마음 속으로 빌었지만. 상한 심정은 내 기분을 하루 종일 가라앉힌다. 지금은 내일을 모르겠다. 억지로 화이팅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는 서서히 올라올 마음을 아니까.
돈이란 게 없으면 없는 만큼 쓰면 되죠, 그런데 최소생계비는 필요하잖아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경비는 드는 게 우리 사회이구요. 좋은 마음으로 고른 책 앞에, 갑자기 왜 삐딱하냐. 내 심사가 뒤틀린 모양이다.
하나님, 오늘도 이렇게 가고 있어요. 지금 위로는 사랑하는 엄마가 예쁘게 치장하고선 방긋 웃으며 외출한 거에요. 더 늙으시기 전에 아름다운 모습 많이 남겨드리고 싶네요.
모두들 더위 조심하시고 평안하시길.
가끔 자격지심으로 울컥하고 욱 하는 모지란 친구도 가엾이 여겨주시길.
"나마스떼!"
「침낭을 산 첫날 밤은 포근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뜨거운 물을 물통에 담아 침낭 안쪽에 넣어 밤새 따뜻하게 잤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오랜만에 가볍게 아침을 맞이하고 침대에서 나온 내 모습은 완전히 닭 그 자체였다.
싸구려 침낭에서 비어져 나온 오리털들이 온몸에 촘촘히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의 하루 일과는 몸에 붙은 털을 뽑아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이다.」
- '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