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추상 지기 춘풍...

갑질해서 미안해요

by 윤작가

얼마 전 문자가 날아왔다. 미납금액으로 카드 정지가 되었으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방금 결제를 했는데, 무슨 미납금액에 무슨 카드정지. 곧바로 전화하여 알아봤더니, 하루 늦어서 아마 어찌 될지 몰라 예약 문자가 전송된 것 같다고 상담원이 얘기한다.

내 성질 머리에 불꽃 벼락이 날아가고, 그럼 미리 공지를 하든지 꼬박꼬박 일일 연체료 다 받아가면서 이건 무슨 기분 나쁜 경우냐며 애먼 상담원에게 회사 욕과 함께 질책을 쏟아냈다.

대체 전화만 받았을 뿐, 그 사람이 오너도 아니고 무슨 잘못인가. 이게 아빠가 지적한 '아는 티', 신영복 샘이 얘기하시는 '먹물'의 거만함이 아니던가.


인성이 이것밖에 안 되는 줄 다시 한번 느끼며 그래도 나는 상대에게 그리 쏟아내기라도 했지, 내 잘못도 있는데 고객 운운하며 따박따박할 말이라도 다 했지. 그 사람은 누구에게 속상함을 털어놓으며 위로받을 것인가. 아차 싶을 때는 이미 물은 엎어졌다.


"없이 사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사정을 구구절절 다 얘기하면서 살아요? 그냥 욕먹으면서 사는 거지요."

- 신영복, <<처음처럼>> 의 <변소 문>중에서


남들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대인춘풍 지기추상'을 거꾸로 나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대인추상 지기 춘풍'으로 바꿔 살고 있는 모습에 세찬 소나기 같은 반성을 지금 읽고 있는 책이 하게 한다.

없는 사람, 물질의 유무를 떠나 낮은 자리에 있는, 조금 더 약하고 배려가 필요한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마냥 부끄럽다.


예전 중학교 어느 선생님이, 길거리에서 설마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사 온 냄비가 불량임을 확인하고 크게 따지려 들 때, 그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얘야, 너는 선생이 되어 가지고 온 동네방네 떠들썩하니 시끄럽게 굴지 말아라. 조용히 얘기하고 대강 넘겨라."

선생으로서 교양을 지키라는 말씀이셨으리라. 그러고 보면 가르치는 것과 실천하는 것, 누군가에게 말한 대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어릴 적 다른 친구들이 무시하는, 소위 덜떨어진(?) 아이들과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어울려 다니던 모습이 가끔 그립다.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살이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새삼 겸허해진다. 나는 무얼 그리 바르게 살았느냐. 다시 정신을 매만지고 똑바로 살아야지.

무서울 정도로 천둥 번개 치며 세차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물러가고 다시 새들이 찍찍 댄다.

그래, 자신의 변호조차 포기하고 마음속 깊이 응어리를 가진 채 홀로 아파하는 이들의 마음속으로 다가가야지. 비록 때때로 실패한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그들의 삶 속에서 같이 살아가야지. 나는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합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 신영복, <입장의 동일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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