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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영 May 21. 2018

이야기하면 견딜 수 있다

<가장 사소한 구원>을 읽고


1.

"살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내가 다니던 교회 중고등부 선생님 한 분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시 사십 대 중반이셨던 선생님은 실제로 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이십 년 이상 어린 친구들과 자주 시간을 보냈고 나는 그중에 한 명이었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데 나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때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

라종일 교수와 김현진 작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책을 통해 친구가 됐다. <가장 사소한 구원>은 이 두 친구가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를 모은 책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를 만나고 싶다'던 예전 교회 선생님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지금도 여러 친구들과 사귀고 있을까.


2.

나의 가장 사소한 구원은 뭘까. 마음을 주고받는 일,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듣는 일, 그렇게 서로 존재를 알아봐 주는 일.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야말로 우리에게 구원이 되지 않을까.


어떤 슬픔도 그것을 이야기에 담거나 그 고통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딜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빼앗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배신입니다.
-애나펠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갑니다.
때때로 그렇게 없어진 이야기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생각합니다. (240p)



살다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이나 책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찾을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만나 하나의 메시지로 응축될 때 나는 짜릿함을 느낀다.


은유 작가의 책에서, 록산 게이의 <헝거>를 소개하는 글에서 위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이야기하는 순간,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라고. 김현진 씨와 라종일 교수가 편지로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서로에게 베풀고 다시 돌려받는 사소한 구원일테다.



또 하나.


요즘 인터뷰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책을 읽다가 실마리를 찾았다. 의도치 않은 일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 또는 지금 만나고 있는 주변인들을 꾸준히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왜 하는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다. 스스로 정리하지 못한 일을 실행할 수는 없는 터라 답답해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점심시간에 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샀고 여기서 단서를 찾았다. 이제 적어도 '왜 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묻지 않으면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린 모두 이야기해야 하는 존재니까.


어쩌면 인터뷰를 한다는 건 이야기 할 특권을 갖는 일이기도 하겠다.


놀라운 것은 <가장 사소한 구원>을 다 읽고, 바로 읽기 시작한 <인터뷰 특강>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는 거다. (이건 아직 읽는 중. 지하철에서 짬짬이 읽느라 북마크를 못했다;)

 

남은 과제는 이제 나의 언어로 이 메시지를 다시 정리하는 것. 찾은 지점에 나의 깃발을 꽂고 다른 지점과 연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세계는 고유한 모양으로 구성됨과 동시에 다른 세계와 연결되겠지.




* 이건 그냥 좋아서 메모한 내용.

사람들에게서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혹은 그렇게 생각하기 전에 상대방을 자신의 왕성한 식욕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자기의 사랑이 이미 배신을 잉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탈레랑은 언어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말속에 얼마나 많은 엉뚱한 생각들을 숨기고 있습니까?(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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