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의 천재들>, 정혜윤
정혜윤 작가의 글은 어렵다.
대화체라 친근하게 느껴지면서도 내용은 다소 관념적이어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맛을 음미하듯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야 겨우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럼에도 정혜윤 작가의 글을 읽는 이유는 이야기에 힘이 있어서다. 귀 기울이게 하는 힘. 사람으로 따지면 명쾌한 답을 주는 사람이라기보다 자기 이야기를 몇 마디 던지고 홀연히 사라졌는데 나중에 그 이야기가 떠오르게 하는 사람 같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작가가 먼저 어떤 인물을 소개하고, 소개 받은 인물이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화자가 두 명인 셈이다. 마이크를 들고 친구를 소개하다가 친구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다 보면 왜 정혜윤 작가가 <사생활의 천재들>을 가리켜 인터뷰집 아닌 ‘이야기책’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사생활의 천재들>에는 영화감독 변영주, 만화가 윤태호, 사회학자 엄기호, 자연다큐 감독 박수용, 야생 영장류 학자 김산하 등 8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정혜윤 작가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자기 삶을 사는 데 천재인 사람들이다. 이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만화가 윤태호의 이야기다. 기억하고 나누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 글이 노란색 색연필로 뒤덮일 지경이었다.
존재감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존재감을 얻기 위해 언제까지고 시시덕거리며 비위나 맞춰 주고 있을 수만은 없단 걸요. 나도 내 말을 해야 하는구나. 그래야 상대방이 편안해하는구나. 내가 자존감을 갖고 있어야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진짜 기뻐하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겠구나. 저 역시도 제 친구가 대단히 훌륭할 때 어쩐지 저까지 존중받는 느낌이 들곤 했었으니까요.(144p)
: 윤태호 작가가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작은 키에 공부도 못하는 데다 피부병을 앓고 있던 그는 심하게 과장된 농담을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했고, 그건 '나도 너희와 다르지 않아'라는 아우성에 가까웠다고 고백한다. 자기 존중과 존재감에 대해서, 내 말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제 아내는 뭔가 저보다 더 아는 것이 있어도 그것을 과시하지 않고 같이 찾아보고 같이 알아가는 과정으로 만듭니다. 제 아내는 남이 자신을 어려워하지 않도록 하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저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아내에게 존중받았습니다. (146p)
: '저는 존중받았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이 한 마디로 모든 게 이해되는 느낌이랄까. 책을 덮고 잠시 생각했다. 존중한다는 것, 존중받는다는 것, 그리고 존중의 위력에 대해.
저는 평생 거울을 앞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그 거울에 대고 평생 미치도록 궁금해했습니다. 난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났을까?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태어났을까? 제 거울은 저를 부정적으로 비춰줍니다. 만화는 그런 제가 혼자서만 갖는 유일한 확신이었습니다. (중략)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그 확신에 대한 확인을, 나 자신을 팽개쳐두고 외부에서 찾아왔습니다.(146p)
: 평생 스스로를 궁금해했다는 말을, 답을 찾기 위해 애썼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거울 앞에 서 있는 윤태호 작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거울을 앞에 자신을 두었다는 표현도, 자기 확신에 대한 확인을 외부에서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저는 제가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운이 좋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의 문제를 말하는 겁니다. (148p)
: 한 사람의 인생은 결국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달린 게 아닌가 싶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큰 사고를 당하는 등 상황에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결국 상황보다 사람이고 그래서 사람의 역할이 더 크다는 생각.
예술가가 되는 게 아니라 삶을 예술로 만드는 문제에 관심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 아무리 유일하고 필연적으로 보이는 일일지라도 끝없이 불확실성과 싸워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습니다.(150p)
: 이건 정혜윤 작가의 말이다. 윤태호 작가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어지는 글에서 나온. 예술가가 되는 것보다 삶을 예술로 만드는 일, 끝없이 불확실성과 싸워야 한다는 말. 공감되어 밑줄을 그었다. 지난주에 본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도 떠오르고…
이 이야기가 혹시 “온갖 역경을 불굴의 의지로 뚫고 마침내 성공했다”로 들리는가요? 제 귀엔 그 반대로 들립니다. 온갖 어려움을 많은 도움을 받고 간신히 뚫고 나왔으며 아직도 두려움과 불안으로 떨린다로.(150p)
: 이것도 정혜윤 작가의 말. 나 역시 윤태호 작가의 말이 ‘비로소 완성된 사람’이 아닌, ‘어려움이 많았으나 간신히 이겨냈으며 조금 나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으로 떨리는 사람’의 이야기로 들린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우리가 지금 이 모습으로 태어난 것, 그 이유를 찾는 데 우리는 늘 결정적으로 실패합니다. (중략)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는 매일매일 묶여서 반복적인 일을 하는 시지프스이면서 동시에 반항하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151p)
우리가 우리 삶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가 어떤 필연성을 우리 삶에 부여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우리가 어떤 행동인가를 할 때뿐일 겁니다. 우린 대체로 과거에 필연성을 부여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러나 일어난 과거의 일은 필연성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당시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153p)
: 나는 운명을 믿는다. 그리고 운명을 구성하는 것은 나의 크고 작은 선택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운명은 나의 선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명에 맡겨진 존재이자, 운명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정혜윤 작가가 말한 사생활의 천재들이란 무엇일까.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표현이다. 본문에 있는 글귀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이들은 사생활을 보여주는 데서
천재들이 아니라
사생활을 살아내는 데서 천재들이다.
그들은 진부하고 시시하지 않게
살려고 애쓰는 데서 천재다.
그들은 자기 삶에 던져진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자기 삶의 문제를 직면하는데,
그것을 푸는데,
그것에서 보편성을 보는데 천재적이다.
즉 그들은 삶의 태도에서 천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