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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영 Aug 22. 2018

울음 같은 글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고


최은영 작가의 글을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밀려온다. 나는 그녀의 글을 감각으로 기억한다.


첫 소설집인 <쇼코의 미소>를 읽었을 때 귓가에 물기 어린 목소리가 맴돌았다. 울음을 머금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는, 그러나 끝내 그것을 참아내는 느낌이었다. 읽고 있으면 덩달아 나도 울고 싶어 졌다.


<내게 무해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아서 자주 멈칫했다. 그럴 때마다 아무나 붙잡고 “이 문장 너무 좋지 않으냐”고 물으면서 부푼 마음을 공유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아무 말이라도 꺼내 놓아야 팽창한 마음이 터지지 않을 것 같았다.


최은영 작가는 등장인물을 통해 조심스럽고 정직하게 관계의 면면을 응시한다. 모두에게 있을 법한 어떤 관계, 어떤 상황, 어떤 마음들, 그러나 작고 미묘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두 소설집에서 나는 흘러가버린 혹은 일부러 놓아버린 과거의 내 마음들과 자주 마주쳤다.  


문장은 아름답지만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는 소설이 있는데, 최은영 작가의 글은 장면이 선명하게 보이면서도 문장이 아름답고 표현이 새로워 오래 마음에 머문다. 어렵고 생소한 단어가 아닌 익숙한 단어와 표현으로 이렇게 새롭고 묵직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능력에 매번 감탄한다.







걔랑 같이 밥을 먹어도, 같이 길을 걷고 이야기하고 웃어도 괴로웠어. 우리의 마음이 너무 달라서 외로웠어. 마음이라는 게 사그라지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면 그 마음이 사라질까 봐 겁이 났어. 아무리 나를 괴롭게 하더라도 소중한 것이었으니까. 그 마음을 잃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단지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외로워지기 싫어서,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서 진짜 마음 하나 없이 함께하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게 나에게는 가장 무서운 것이었는데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까.


이십 년 전, 우리처럼 그곳을 떠돌던 사람들의 마음이 그 가을의 나를 부축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 멀리서 맴돌기만 했다. 나의 인력으로 행여 누군가를 끌어들이게 될까 봐 두려워 뒤로 걸었다. 알고 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비참해져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모래로 지은 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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