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을 추억하며
휴가철이다.
SNS가 휴가를 떠난 사람들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회사에서도 휴가 이야기가 한창이다. 다들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떠난다며 바쁘다. 아직 휴가 계획이 없는 나는 아쉬운 마음에 괜히 지난 여행 사진을 훑어본다.
"다녀온 여행지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망설임 없이 몽골을 꼽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질문한다. "그래? 뭐가 좋았는데?" 하고.
글쎄, 뭐가 좋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몽골이 좋았다. 흡스골에서 보낸 하루와 울란바타르에서 보낸 마지막 날을 제외한 모든 날에 차를 타고 달리고, 먹고, 자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차에서 보낸 시간이 전체 일정의 2/3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동 시간이 길었다. "지루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지루한 순간이 있었고 멀미로 고생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좋았다.
끝없이 반복되는 넓은 초원과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푸른 하늘은 시공간의 의미를 희미하게 했다.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알기 힘들었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인터넷도 안되고 전기도 귀해서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이제 4시쯤 됐으려나 하고 보면 저녁 8시였고, 6시쯤 됐으려나 하면 밤 11시였다.
몽골의 여름해는 아주 길다. 11시, 12시가 돼야 해가 저문다. 내가 아는 밤 11시는 아주 깜깜한데 대낮같이 환한 11시라니…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본 듯 시간의 숨겨진 면을 목격한 것 같아 생경했다.
여기가 어디고 지금이 몇 시인지 몰라도 불안하지 않았던 건 목적지가 있었고 우리를 이끌어주는 든든한 가이드와 드라이버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 몫의 수고와 불안을 감당해 준 그들 덕분에 나는 편히 자고 수다 떨고 음악 듣고 멍 때리고 그리고 또 자다가 일어나서 밥 먹고 사진 찍고 놀면서 ‘지루해서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너무 게으른 여행 아니냐고, 여행이 아니고 관광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달리는 차에 몸을 맡긴 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낸 시간. 그렇지만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던 몽골 여행. 대책 없이 휴가철을 맞이하면서 지난 여행 사진을 보니 그때 그 공간, 시간이 속절없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