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켜니 알림이 뜬다. 팔로우 요청이다. ‘누굴까?’ 반가운 마음에 버튼을 눌러 확인해 본다.
‘아......’. 회사 사람이다.
나는 회사 사람과는 SNS 친구를 맺지 않는다는 이상한 철칙을 가지고 있다. 퇴사한 동기는 팔로우 요청을 받지 않는 나에게 ‘난 퇴사해서 이제 회사 사람도 아닌데 너무하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깟 SNS가 뭐라고 이렇게 깐깐하게 구나' 싶어 미안했지만 끝내 수락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모두와 맺을 수 없다면 그 누구 하고도 맺지 말자는 것.
회사 사람이라고 다 싫은 건 아니다. 친하게 지내는 비슷한 또래의 동료와는 친구를 맺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싶다. 영화나 책을 보고 소감을 올리거나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는 등 대단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문제는 이 보잘것없는 일들을 굳이 내가 원하지 않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보이고 싶지 않다는 데 있다.
유난이라고, 얼마나 대단한 내용을 올리기에 그러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한 번 시작하면 빠르게 확장되는 SNS의 관계망이, 그 속도와 연결이 나는 부담스럽다. 누구 하고는 맺고 또 다른 누구는 모른 척하면 분명 후자는 감정이 상할 테고 나는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없어 모두와 친구를 맺은 채 소소한 일상을 나누지 못하고 눈팅족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몇 년 전 팀장님, 차장님과 친구를 맺은 후로 점점 활기를 잃고 잠들어 버린 내 페이스북처럼.
나의 경계는 왜 이토록 뚜렷한가
아직 풀지 못한 내 오랜 숙제다. 때로는 내가 너무 폐쇄적인가 싶어 이유를 골똘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나에겐 누군가에 대해 ‘너는 여기까지, 더는 안 돼’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경계가 희미한 사람도 물론 있었고...
경계의 위치와 강도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선을 넘어오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도망가거나 밀어 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왜, 나는 편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걸까.
또 왜 편하게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자신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공간에 자신의 사진을 올린다거나,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저마다 타고난 기질과 성격이 다르기에 무엇이 더 좋다거나 정답이라고 할 순 없겠지. 나는 그저 이런 내가, 단단한 내 경계의 뿌리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