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한 방을 쓴다. 가구라고는 침대와 옷장이 전부인 기숙사 같은 방이다. 90세를 눈 앞에 둔 할머니와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나. 우리는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침대 위에서 매일 함께 눈을 뜨고 감는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같이 하다 보면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된다. 잠들기 전에는 더욱 그렇다. 어제의 주제는 ‘제주도’였다. 내가 여름휴가로 제주에 갔다 오면서 사온 오메기떡이 얼마나 맛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작됐다.
나는 모로 누워 할머니가 낮에 얼마나 맛있게 그 오메기떡을 먹었는지 생생히 증언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오메기떡을 먹어 본 사람처럼 할머니는 ‘맛있다’, ‘단 꿀맛이다’를 연발하며 먹고도 저녁이 되자 그 일을 까맣게 잊었다. 할머니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도 이렇게 쉽게 잊는다.
이런 할머니가 또렷이 기억하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나이가 들면 단기 기억력은 약해지고, 옛날 일들은 오히려 잘 기억한다고 했던가. 나는 요즘 할머니를 보면서 그 말이 꼭 맞다는 걸 자주 느낀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당시 이십 대 중반이었던 할머니의 이야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계모임 사람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 바람이 부는 제주의 어느 바다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여행의 흥을 돋우기 위해 제주의 기생을 초대했다. 전문 엔터테이너의 등장으로 흥이 오르기도 잠시, 평소 소리와 춤을 잘했던 계원이 흥을 이기지 못하고 무대에 올랐다. 계원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무대에서 바람을 소품 삼아 맘껏 기량을 뽐냈다. 누가 봐도 기생보다 나은 솜씨였다. 졸지에 기가 꺾인 기생은 그 자리에 더 있지 못하고 황급히 돌아갔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때 계원이 얼마나 춤과 노래를 잘했는지, 돌아간 기생에게 얼마나 마음이 쓰였는지를 자주 이야기했다. 매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했다. 할머니에겐 늘 처음 하는 이야기, 내겐 스무 번도 더 들은 이야기다.
또 다른 하나는 할아버지의 대한 기억이다. 숫기 없고 유흥을 즐기지 않던 할머니와 달리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술과 노래를 좋아하는 흥 많은 분이셨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는 기분 좋게 취해서 현철의 ‘청춘을 불러다오’를 부르며 집에 들어올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한 번도 같이 부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가수처럼 노래를 아주 잘했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자주 말했다. 이 역시 내가 스무 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다. ‘청춘을 돌려다오’는 이제 할머니의 18번이자 할머니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노래가 되었다.
마지막에 남는 내 이야기는 무엇일까
할머니를 보면서 나중에 내가 할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마지막까지 기억할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세월이 흘러 육체는 쇠하고 모든 것이 흐릿해져도 끝까지 살아남아 또렷이 기억될 나의 어떤 이야기. 할머니에게 남은 기억들은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타인이 건넨 농담, 누군가의 반응 같은 사소한 일상과 순간들.
특별한 의식 없이 흘려보낸 평범한 순간이 마지막에 남을지도 모른다. 날씨가 너무 좋아 걷기만 해도 웃음이 났던 어떤 날이라든가,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순간,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난 엄마가 날 보고 아이처럼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던 장면 같은 것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무의식이 끝까지 살려 놓을 사소한 기억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내가 어떤 이야기를 열 번, 스무 번 하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