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멈칫하게 한 두 가지 질문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으세요?
글쓰기 수업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리 새로운 질문은 아니었지만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답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먼저 대답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다른 학인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십 대 중반부터 오십 대까지 연령은 다양했지만 답은 하나였다. 인생의 황금기라는 '이십 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답이 나올 법도 한데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모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에 동의하며 소리 없이 웃을 뿐이었다.
인생의 어느 시기나 녹록지 않고, 생은 원래 고단한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특정한 시기가 떠오르지 않았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살아온 자리와 시기마다 조금씩 다르게 힘든 일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냥 그 시간을 다시 살아내야 한다는 거 자체가 고단하게 느껴졌다.
사십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분은 “어휴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그걸 또 살아!”하며 익살스럽게 웃기도 했다.
옆에 앉은 중년의 학인들이 대단해 보였다. 마치 나는 아직 남은 숙제가 많은 사람처럼, 그들은 자기 몫의 숙제를 많이 끝내 놓은 사람 느껴졌다.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고 이번엔 또 다른 사람이 물었다.
“과거로 돌아가면 아이 낳을 거예요?”
중년의 학인들이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 분이 입을 열었다.
“육아의 고통을 모르니까 낳았지 다시 돌아가면 절대 안 낳지. 근데 지금 내 아이를 만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알았는데...안 낳을 수 없을 것 같아.”
방금까지 도리질하던 학인들이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로 돌아가면 다신 아이를 낳지 않겠지만, 지금 내 아이를 생각하면 낳고 싶다는 오묘한 대답. 엄마는 아니지만 알 것 같았다. 그냥 ‘대상’과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는 분명 다르니까.
영화 <어바웃 타임>도 생각났다. 타임리프 능력이 있는 주인공이 과거를 바꾸자 그의 아이가 달라졌고, 당황한 주인공은 고민 끝에 다시 시간을 돌려 자신의 아이가 있는 때로 돌아간다. 원래의 목적을 과감히 포기하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본 글귀도 떠올랐다.
‘부모가 되는 일은 세상 최대의 축복인 동시에 부모가 되는 순간 세상 최대의 약점을 갖게 되는 천형이다.‘
이 글귀에 밑줄을 긋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던 기억이 난다. 최대의 약점을 가진 사람이 최대의 축복을 경험하다니…. 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너무나 큰 약점이기에 과거로 돌아가면 다시 하고 싶지 않지만, 또 최고의 축복이기에 안 할 수 없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엄마 학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이 표현을 이해했다.
아직은 짐작만 하는 부모라는 존재의 무게감, 그리고 ‘쉽기만 한 인생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 두 가지 질문을 통해 다시 마음에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