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쳐진 두 시간.
잠시 선잠에 들었었어. 삼나무 사이로는 햇볕이 내리 쬐었지. 땅바닥의 표면은 말라 있는데 그 아래는 진흙이었어. 흙내음과 숲의 향기가 평소보다 더 진했었지. 비가 내렸었던 거야. 별안간 새가 등 뒤로 넘어갔어. 그리고 끝에서 이 모든 감각을 느끼던 나를 발견했지. 이처럼 고요한 숲에 들어오면 누구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마련이야. 천문학자가 무량겁의 세월을 고요히 관측하며 찿은 게 결국 자신의 뒤통수이 듯이 말이야.
... 느긋한 마음으로 사물을 본 게 얼마나 오래 전인지, 소요와 표류가 얼마나 내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지 잊고 살았어. 땅과 하늘, 나무, 돌, 바다, 신, 음악, 예술, 언어, 철학, 공학, 기술, 문명, 과학 등 수많은 현실에 배척당해 잊힌 또다른 현실이었지. 그들이 말하던 건 언제나 다른 곳, 다른 무언가에 관한 것이었어. 그곳에 있었지만 그곳에 있지 않았지. 자신이 있던 곳을 거부하기에 자연스레 불만이 남았어. 한결 더 먼 곳에 있기를 원하며 그곳에 도달하면 그곳은 다시 여기가 되었지.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 원하는 건 모두 주변에 있었지만 단지 그것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원치 않았어. 행복은 갖고 있는 것을 계속 열망하는 것인데도.
바쁘게 살아가다보면 사유의 기회를 결코 찾지 못하지. 생각하는 동안에도 현실은 쉼없이, 가혹하게 흘러가. 시간은 언제나 모순이야. 멈추어야만 하는데 멈출 수 없고, 흐르지 말아야 하는데 쏜살같이 흘러가. 그리고는 그 시간 속에 갇힌 채, 너무나 늦은 깨달음이 뒤를 메우는 거지. 그래서 시간은 두 가지야. 무섭도록 빠른 시간과 지독히 느린 시간.
자신이 통제하지 못할 정도의 막대한 바쁨을 수용하다보면 하루하루는 피상적으로 변하지. 수년 후에는 모든 세월이 어디로 흘러가버렸는지 당사자를 의문 속에 빠져들게 하고, 그 모든 세월이 흘러가버림에 안타까움에 젖는 단조로움만이 남을 뿐이야. 공허의 감정으로 자신의 비극을 증명하는 일만 남은 거야. 이것과 저것의 차이를 모두 없애는, 같은 형태로 만드는 그런 감정 말이야. 그래, 나에게 비극은 늘 늦은 깨달음과 이른 현실의 간극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