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대화하는 법이 곧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몸과 셀프 화해하고 다리가 낫게 되면서, 매일 어떤 리추얼을 습관화하게 됐다.
바로 아침 혹은 밤 샤워를 하기 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볼 때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 주는 것.
아침에 잠이 덜 깨 부스스한 내 모습도, 저녁에 하루 일과를 끝내고 얼굴에 개기름이 올라온 모습도.
예전 같았으면 피부에 난 트러블이나, 도무지 정돈되지 않는 부스스한 반곱슬 머릿결 등을 보며 한숨을 쉬었겠지만, 이제 더는 그런 방식으로 내 몸을 대하고 싶지 않았다. 친한 친구와 매일 같은 패턴으로 싸워 오다가 뭔가 관계에 전환이 온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내가 더 오래 이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지금 같은 태도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무조건 거울을 보고 칭찬을 했다. 내가 안 이뻐보이는 날도 그냥 ”아 미친.. 진짜 이쁘다! 진짜 사랑스럽다! 와, 대박. 내가 이렇게 멋지게 태어났다니! 유전자 배팅 대성공이잖아...“ 하고, 누가 언듯 들으면 어이없을 만큼 무조건으로 스스로를 칭찬해줬다.
그게 실제인지 아닌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긍정하고 칭찬해준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이러다 보면 날 너무 좋아하는 푼수떼기 친구를 보는 것 같아서, 스스로도 조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피식 비어져 나오곤 했는데, 그렇게 웃고 나면 기분이 정말로 좋아지기 때문이었다.
저녁에는 거울을 바라보며 비친 날 그냥 가만히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내가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아한 내 신체부위. 어디의 사이즈가 어떻고, 피부 빛깔이 점 더 고왔으면 좋았겠는데, 이는 앞니가 조금 튀어나와 토끼 같네... 가슴팍에는 좀더 살집이 도톰하면 예쁘겠는데...하는 생각들. 그런 생각들이 불러오는 부정적 감정을 끊어내는 습관을 들였다.
“내 몸은 이렇다. 타인의 기준에서 좋고 나쁘고 가치 판단을 떠나 이게 내 모습이고. 내 얼굴, 내 이목구비, 목, 어깨 팔다리 허리다.” 그냥 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인식했다. 몸의 각 부위에 얽힌 수치심, 자부심, 사랑, 소중함, 미움 같은 감정들이 생각지도 못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걸 그저 인식하고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자면 내 종아리. 어릴 때부터 엄마가 내 종아리를 보고 몸에 비해 코끼리 다리라고 놀려서 어릴 땐 내 다리를 별로 안 좋아했었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내 다리가 그렇게 두꺼운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아, 그런데 운동부에 들어갔을 땐 내 튼튼한 종아리가 오히려 좋았었네. 같은 몸인데 누가 보고 말하느냐에 따라 평가를 달리했었구나. 그냥 내 몸일 뿐인데.
생각과 감정 관찰을 거듭할수록 내 몸에는 나라는 인간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지가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빚는 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몸과 대화하는 방식은 나라는 한 인간의 의식 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나 다름없구나.
더 아껴주고 예뻐해줄걸, 하지만 이제 오래된 구조물을 다 들어내고 얼마든지 처음부터 다시 지을 수도 있으니까 아무 문제 없어. 이젠 괜찮아. 그렇게 몇 번이나 나에게 말해줬다.
내 몸을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이 들고, 어떤 감정이 드는지? 그것을 분리해서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 거울을 보게 되면, 꼭 한 번 자신에게 물어보면 좋을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