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프레임을 벗으면, 희한하게도... 정신건강이 좋아진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보고 좋아해주는 연습을 하면서 시나브로 몇 가지 일상의 변화가 생겼다. 겉으로 눈애 띄게 드러나지는 않는 변화이지만, 내가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이전에는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내 눈길을 잡는 이들은 하나같이 멋지고 아름다운, 외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핸드폰을 켜면 볼 수 있는 수많은 ‘이상적인 몸’의 편린을 조금이나마 갖고 있는 그런 사람들.
그런데 어떤 기준에 따른 몸이 아니라, 존재하는 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하자 그런 미의 기준이 내 안에서 다소 흐려졌다.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한 타인의 몸과 그 움직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조깅을 하며 스트레칭을 하는 아주머니의 행복한 당근처럼 짧지만 튼실한 다리 놀림, 보행 유모차를 끌고 살짝 구부정하게 지나가는 할머니의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영청 굽은 허리. 오랜 단골 카페 사장님이 커피를 내리는 손길은 생각보다 더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아름다웠고, 지하철 계단을 묵묵하게 걸어 올라가는 아저씨의 걸음은 든든한 메트로놈처럼 안정적이었다. 내가 보지 못한 수많은 몸의 움직임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태와 색을 가지고 일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퇴근길, 문득 눈에 보이는 모두가 놀랍도록 아름다워 보였던 순간이 있었다.
멀리 지나가는 호리낭창한 버들가지 같은 여자와, 탄탄한 걸음을 힘차게 옮기는 학생과, 그 순간 그 자리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마치 무대에 올라온 배우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저녁에 비치는 햇살은 은은한 무대 조명 같았고 모든 이의 각양각색의 몸이 더불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잘 짜인 무대나 조화로운 정원 같았다.
꼭 어떤 필터를 쓴 것처럼. 숨겨진 야광 물질에 라이트를 비추면 비로소 보이듯, 이전의 내가 쓰던 프레임으로는 볼 수 없었던 숨겨진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필터. 그 순간의 기분은 잊을 수 없다.
물론 자주 그런 순간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하루에 잠깐씩이라도 그런 시선을 유지하려고 얼마간 노력을 했다. 기능적 측면이든(얼마나 뛸 수 있다거나 얼마나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다거나)미적 측면이든(얼마나 현대적인 미의 기준에 이목구비와 쓰리 사이즈가 부합하며 이성에게 욕망될 수 있는지)건강 측면이든(우울감을 자주 느끼는지, 보행이 원활하지 못한지, 피부나 기타 신체부위에 질병이 있는지...)내가 가졌던 몸에 대한 어떤 좋고 나쁜 기준을 버리고, 그 존재와 움직임 자체로 의식하기.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는 동안 일상의 다른 면에서도 조금의 변화가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 높은 위치에서 빛나는 사람들, 아름다워 모두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 그런 이들을 접하거나 들었을 때 질투심과 자괴감이 어느 정도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지루한 내 몸과 내 존재를 벗고 나 아닌 다른 이가 되어 보고 싶은 욕망. 그런 것들이 훨씬 덜해졌다.
모든 사람이 다른 형태와 기능의 몸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자체로 그러하다. 다른 사람과 과도하게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나 스스로의 가치를 내가 볼 수 없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 지금까지 계속 써오던 타인의 가치 프레임을 벗고 내 가치를 볼 줄 아는 시선을 연습하는 것. 그게 몸과 화해하면서 내가 배운 것이었다.
물론 그런 감정이 아예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비교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문득문득 치미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마치 파도처럼. 하지만 파도에 휩쓸려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든든하게 땅을 딛고 내 중심을 지키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몸’이라는 프레임만 바꿨을 뿐인데, ‘마인드셋’이 함께 달라지는 경험. 오늘 지나치는 사람들을 볼 때 프레임을 바꿔서 한 번 바라보자. 분명 당신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