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위장, 그 용량 늘리기
나를 바라보는 마인드셋을 바꾸면서 생긴 또 다른 변화는 전보다 화가 좀 덜 난다는 사실이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덜.
이전 같았으면 조금만 누군가 나를 자극해도 욱 하고 화가 치밀 때가 있었는데, 화라는 감정과 나 사이에 작은 강, 아니 솔직히 강까지는 못 되지만 작은 시냇물 같은 것이 생긴 느낌이었다.
왜 화가 났니? 들어줄 테니까 다 말해도 돼.
마음 속의 불 같은 분노가 무작정 넘어올 수 없는 나의 경계선. 일단 화가 치밀어올라치면 그 너머로 발길을 건넜다. 그 너머에서 나는 천천히 몸을 물에 적신 후에 차분하게 불을 끄러 다시 넘어갈 수가 있었다.
그래, 내가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네. 여기 물을 좀 더 적셔줄게. 아젠 좀 덜 뜨겁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사람도 저렇게 한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수 있었겠구나. 조금만 더 여유를 가져볼까.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많은 경우 조금 여유를 가지겠다고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내 인내의 용량이 딱 그만큼 확장되는 경우가 많았고, 상황이 훨씬 유연하게 해결되는 순간이 많았다. (물론 너무 화가 나 내 한계를 넘으면 그건 그냥 어쩔 수 없다 화를 내야 한다 아무래도 나는 부처님도 예수님도 아니므로)
언젠가 tv프로그램에서 대식가들의 위장을 식전 식후로 나누어 엑스레이를 찍어 비교했을 때, 이미 목 끝까지 꽉 찬 위장이라도 주인이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는 순간, 위장이 꿈틀꿈틀 움직여 공간을 더 만들었다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여유를 만들겠다고 작은 다짐을 하는 건 어쩐지 그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인내의 위장을 의지로 늘리는 일.
아침 편의점에서 진상을 부리는 내 앞 손님 때문에 계산이 늦어졌다고 투덜거리기보다, 진상을 쫓아낸 편의점 직원분께 수고가 많으시네요, 힘드시죠. 하고 말을 건넨다든지, 왠지 기분 나쁜 투로 메신저를 틱틱거리면서 보내는 타 부서 직원에게 일부러 물결 표시나 귀여운 이모티콘을 곁들인다든지 하는, 정말 사소하지만 한 끗의 인내로 행할 수 있는 친절들.
이런 것들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게 돌아오곤 했다. 편의점에 단골이 되어 들를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던 그 직원분은 내게 사비로 산 작은 케이크를 건네주셨고, 늘 틱틱거린다고 생각했던 동료는 말도 없이 내 실수를 커버해 주기도 했다.
당연히 모든 인내가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이전보다 ‘조금 더’ 인내하고 ‘조금 더’친절을 행하는 것 자체가 내 스스로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준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심리적 효용은 충분하다.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ㅇㅇ씨는 차분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나서 옆에 있으면 좋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여유로운 분위기라. 내가.
어쩐지 머쓱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는데 기분이 좋았다.
사람의 분위기란 겉모습과 옷, 화장 등의 차림만으론 절대 완벽히 연출할 수 없다. 아, 멈춰 있는 인스타 사진 속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움직이고 말하고 사람의 체온이 전달되는 곳에서는 나의 내면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지가 결국 드러나게 된다.
진짜 분위기라는 건 그런 것이다. 속으로부터, 매일매일, 한 발짝 한 뼘씩 스스로를 쌓아나가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