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존재했으면 하는 그곳
요즘 들어 완독 한 책이 없었다. 구멍 파먹듯이 책 여러 개를 두고 이곳저곳 읽다 말다를 반복했다. 교회 동생과 요즘의 독서 근황을 얘기하다가 이제 소설책을 읽어야겠다는 얘기를 했다. 동생이 그 얘기를 듣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책을 빌려주었다. 책을 선뜻 빌려준 것은 고마웠지만 일본 소설을 즐겨 읽지 않았고 생각보다 책 두께가 두툼해서 흥미가 가지 않았다. 빌려준 마음이 고마워서 얼른 읽고 돌려주겠다고 대답했지만 거의 3주 동안 ‘언젠가 읽고 빨리 돌려줘야지.’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거의 숙제를 해치우는 마음으로 카페에 가서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이 책을 열어보았다.
퍼석한 일상 속에 만난 작은 판타지
카페에서 딱 1시간만 읽어보자 생각하며 책을 펼쳤는데 순식간에 2시간이 지나갔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정말 기적처럼 술술 읽혔다. 고등학생 때 도서관에서 처음 해리포터 책을 읽었을 때가 생각났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자습시간을 너무나도 순식간에 지나가게 해 줬던 해리포터의 마법을 오랜만에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다가 감정이 울컥울컥 올라오는 것을 경험했다. 그동안 내 감정이 얼마나 바싹 말라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이 올라왔던 부분은 책의 챕터 중 [시빅 자동차에서 아침까지] 부분이었다. 병으로 몸이 쇠약해진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 할아버지가 미래의 고민 상담자들에게 답장을 받는 스토리를 담은 챕터였다.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 할아버지는 남에게 털어놓지 못할 복잡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의 편지에 심혈을 기울여 답장을 해준다. 그것이 돈이 되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찌 보면 오지랖일 수 있는 행동이지만 이런 인생의 난제에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잡화점의 상담자들은 큰 용기와 위안을 얻어 간다.
내가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던 것은 마법 같은 스토리에서도 피부를 쑤시는 현실의 문제가 느껴졌을 때였다. 산타클로스 같던 주인 할아버지가 갑자기 가게를 쉬었을 때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가게에 방문한다. 적적한 잡화점 안방에서 할아버지는 혼자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아들은 누워있는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그때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방 있냐?’라고 묻는다. 가게 문을 닫고 함께 살자 해도 한사코 거절하던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건넨 이 질문에 나는 우리 엄마와 할머니가 떠올라 갑자기 코 끝이 콱 아렸다. 소설 속에서 나미야 할아버지의 아들도 아버지의 질문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산타클로스도 가게의 적자와 노후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는 그저 사회의 취약계층 중 한 명이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렸다.
어딘가 존재했으면 하는 그곳
나미야 잡화점을 찾는 사람들은 인생의 절벽 앞에 서있는 순간 잡화점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한다.
저만치 나미야 잡화점이 눈에 들어온 순간,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 건물을 감싸고 있던 신비한 기운이 사라지고 없었다.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하늘 위에서 기도를, 379p -
그들이 나미야 잡화점을 인식한 것이 아니라 나미야 잡화점이 절박한 그들을 우유 상자 앞으로 불렀는지도 모른다. 달토끼, 생선가게 뮤지션, 그린 리버 , 폴 레논, 길 잃은 강아지. 책에서 나온 다양한 닉네임의 고민 상담자들은 닉네임만큼 다채롭고 복잡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는 현실의 문제가 너무 크고 복잡해서 어디에 어떻게 털어놓아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사람은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문제를 털어놓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다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나만 곪아서 문드러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세상은 차갑고 두렵고 어두운 곳으로 변한다. 나도 그런 경험을 늘 하곤 한다. 내가 가진 문제가 오로지 나만 가지고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 때, 이 문제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나 혼자 이 문제를 짊어지고 어딘가 하나 곪아 터져 진 상태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느껴질 때 주위의 빛들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어둠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 동네에 나미야 잡화점 같은 곳이 존재했다면 나는 그곳의 존재를 인식했을 것이다. 아마 단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털어놓지 못한 많은 고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흥미롭게 읽혔는지도 모른다. 전혀 풀 수 없이 꼬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냈는지 궁금했고 다 즐거운 결말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해결돼있는 문제들을 보며 나의 문제도 풀려가겠지..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기적을 바라곤 한다. 기적처럼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나가기를. 하지만 현실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기에, 그리고 그러한 것을 계속 경험하며 우리의 마음은 움츠러들게 되고 습기 없이 퍽퍽해져 가는 것 같다. 마음이 움츠러들고 퍽퍽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책을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퍽퍽한 현실이 아닌 잡화점이 있는 동네에 머물며 함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하며 움츠러든 마음을 펴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