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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Mar 27. 2024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

마음의 습을 바꿔나가며, 안녕


점점 코 끝이 차가워지는 계절이 다가왔다. 몸은 내가 인정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더 아파왔다. 눈 뜨기 힘겨운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저녁으로 남편을 붙잡고 울음을 토했다. 그래도 이게 나았다. 고통 속의 나를 마주하고 나니, 부정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기에.


중심을 ‘나’로 두었다. 쉽지 않았다. 마치 늘린 고무줄이 당연히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듯 다시 ‘회사‘를 가운데로 두었다. 그 또한 받아들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무줄을 다시 늘였다. 다시 중심을 ‘나’로 바꾼다. 그렇게 반복했다. 머릿속 오래 박혀있던 습을 바꾸는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바꾸고, 또 바꿨다. 울고, 또 울었다.


[저, 휴직하려고요 선생님. 진단서 부탁드릴게요.]


수십 번을 울고 나서야 나를 위해- 입을 뗀다.


다시 휴직하겠다는 말을 꺼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곧 내 편이 된다는 뜻은 아니기에, 몇 번이나 설득당하는 시간을 거쳐야 했다. 설득을 당하는 건지, 돌을 맞는 건지 알 수 없는 말들이 나를 향했다. 너 이러면 승진할 때 돼서 후회한다. 이거 안 하면 뭐 하고 살려고 그래. 괜찮아 보이는데, 그렇게 아파? 다시 생각해 봐. 비슷한 결의 말들이 날아왔다. 몇 번이고 답하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앞뒤 없이 엉엉 울고 싶었다. 그래도 몇 번이고 그냥 삼켰다.


‘저는 아픈 걸 보이고 싶지 않은 거지, 아프지 않은 게 아니에요.’


-


나는 서무 업무를 맡고 있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손으로 현실적인 것들도 마무리 지어야 했다. 휴직원을 작성하고, 공문을 기안하고, 결재를 올렸다. 끝내야 할 업무를 마무리 짓고, 짐을 챙기고.


그렇게,

스스로 정리했다.


그 모든 과정 과정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한동안 마지막이 될 오후 6시.


컴퓨터를 끄고 내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모니터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포스트잇, 쌓아놓은 업무 편람들, 항상 옆에 두고 살았던 텀블러. 챙겨 먹어야지 해놓고 매번 잊어버려 먼지 쌓인 영양제 통. 항상 두려워했던 전화기까지.


서랍 속 공무원증을 꺼내 가방에 넣으려다 사진 속의 나와 눈을 마주친다- 앳되고 해맑은 내가, 고스란히 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넌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겠지.

미안해.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금방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지. 이렇게 떠났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살아가는 내내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 무엇도 알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알 수 없는’ 삶으로 들어간다는 걸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내 세상의 안정감은 생각보다 견고했고, 높았기에. 이 안에서 울고 웃고 힘들었던 나날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닐 수 있는 인생이지만 나에게는 전부였다. 이번엔 처음과는 달랐다. 전부 여기에 두고 가야 한다. 혹시 영영 떠날 수도 있으니, 잘 내려놓아야 했다.

-


그것은 좋았던 기억들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고맙게도 내 곁에 있어주었다.


같이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고, 때로는 퇴근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경조사를 축하해 주고, 슬퍼해주고. 잊고 사는 듯하다가도 가끔 안부를 전하며 서로를 기억해주고 했던 나날들.


그런 날들이 나를 이 안에서 살아가게 했다.


불행하다고 생각해 왔다. 내 세상 안에서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날들이 많았다. 때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분했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 모든 생각과 괴로움을 내려놓고 나서야-


나, 잘 지냈구나. 이 안에서 그래도 행복했구나. 어쩌면 나는 매일매일 행복했을 수도 있다, 나를 괴롭히느라 느끼지 못했을 뿐. 아이러니하게도 다 내려놓고 나니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다시 만날 지, 여기서 안녕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인사하고 싶어졌다-


-

안녕, 내 세상.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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