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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Apr 10. 2024

읽어내는 연습을 하는 사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한 발짝 나아가기.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냈다. 평소와 같이 잠에 잘 들지 못했고, 낮에 혼자 있으면 발작을 일으켜 남편이 몇 번이나 집으로 달려와야 했다. 몸은 돌덩이처럼 굳어버려 나 자신을 씻기고 돌보는 데에도 하루 종일이 걸렸다. 갑작스레 밀려오는 충동적인 행동을 제어할 수 없어 차라리 병원에 입원하는 게 덜 고통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힘들었지만 바로 옆에서 내 감정들을 고스란히 받아 낸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무언가를 하고 싶다거나 좋아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없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동안 그런 것들에 시선을 둘 여유가 없었다. 가끔 회사 동호회에서 볼링을 치거나 배드민턴을 배우거나 했지만 ‘하고 싶어서’,‘좋아서’ 한 건 전혀 아니었다.


그저 좀 더 견고하게 안착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뿐.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

실연당한 사람 같았다. 처음엔 숨도 못 쉬게 힘들었다가, 다행히 천천히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조금 움직일 기분이 들었다. 그대로 옷만 챙겨 입고 나가 바로 요가원으로 향했다.


나는 요가를 자주 했다. 매트 위 공간에서는 모든 생각이 옅어진다. 그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마다 발걸음을 옮겼다. 요가는 순간순간의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회사를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출근을 위한 수단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데 출근을 안 하는데도 그냥 계속하고 싶었다. 시간 틈나는 대로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아무 이유 없이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냥, 하고 싶어서. 어색하고 낯설었다. 정해진 결과 없이 과정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게, 내 삶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구나.


신기했다.


그전에는 매트에 누워있을 때면 민원인이 소리치는 소리들이 웅웅 거리며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다가 옅어졌다. 그동안 내 가까이에 있는 모든 소리들은 짜증과 고함과 신경질들 뿐이었다. 그런 소리들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나니, 공백 속에서 다른 생각들이 이어졌다.


나를 위한 생각을 한다.

나를 위해 매트 위에 누워 고요함을 느낀다.



나는 또 뭘 하고 싶더라,


-


어렸을 때 글짓기를 잘했다. 곧잘 상도 받았었다. 더 배우고 싶었다.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엄마 없이 아빠와 지내고 있었다. 우리 아빠는 나의 그런 것들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아빠는 아침마다 인력사무소에 나갔다. ‘매일’ 나가지 않았다. 그냥 내키는 대로 갔다. 일주일 중 등교할 때 거실에 누워 자는 아빠의 모습을 볼 때가 제일 많았다. 내가 제일 싫었던 건 그런 아빠를 깨워 버스비를 받아야 할 때였다. 돈 몇천 원에 아빠 앞에서 쪼그라들었다. 그런 아빠와 지내는 나에게 글 쓰는 걸 배우고 싶다- 그런 건 사치였다. 16살도 잘 알았다. 아니, 너무 빨리 알았다. 그래서 그냥 감췄다. 감춘 마음은 흔적도 없이 숨었다.


나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


수없이 울고 마음이 아리고 나서야, 끄집어냈다.


비로소 내 마음을 읽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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