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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Apr 17. 2024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그냥 내딛으면 되었다. 툭.


마음 알아채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왔지만, 진짜로 글을 ’ 쓴다는 것‘ 은 다른 문제였다. 또 오랜만에 하고 싶은 것이 생기니 마음이 자꾸만 앞섰다. 공모전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다가 당장에라도 책을 내고 싶어 져 갑자기 독립출판 관련된 글을 뒤적이다가- 덮었다가- 반복했다.


블로그에는 간간히 짧은 일상이나 글을 올려왔지만, 정말 글을 쓴다는 건 내가 무얼 써야 하는지도 정해야 하고, 어떻게 쓸 건지도 정해야 하고, 정말 다른 문제였다. 그렇게 첫 발을 못 떼니, 나 자신에게도 답답함이 밀려왔다. 하고 싶은 거라면서 한 발자국도 못 떼?


나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이었다. 괜찮아지려 하다가도 누군가 조금만 자극을 주면 다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들이 막을 새 없이 새어 나와 감당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나를 건드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답답함은 짜증이 되고 나를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계속 스스로에게 짜증내고 화내고 한심해하고 다시 쓰려고 해보고 반복하다가, 그러다가 그냥, 안 하기로 해버렸다. 더 하다가는 풍선이 찢어져 버릴 것 같아 겁이 났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웅크리는 것뿐이었구나-하면서. 마음을 덮어버렸다.


-


“힘을 조금만 더 빼세요. 내가 원래 할 수 있어도 내려놓고 힘을 뺄 수 있는 에너지도 중요해요. “


휴직 후 나는 한동안 요가만 했다. 거의 매일 수련하다 보니, 몸이라는 건 정말 신기한 거였다. 항상 자연스럽게 됐던 동작이 어느 날 안되기도 하고 어제 성공했던 동작이 다음날 다시 해보면 언제 이걸 네가 했냐는 듯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아예 안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오기가 생겨서 집에서 수도 없이 연습했다. 그냥 될 때까지 무조건 한다는 생각으로. 그런데도 몸은 그대로였다.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날도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동작이 너무 안되길래 어떻게든 되게 하려고 낑낑거리고 있으니 선생님이 힘을 빼라고 계속 얘기하시더니,


[이렇게 힘이 들어가 있는데 한걸음 걷는 게 쉽게 되겠어요? 요가도 똑같아요, 내 안의 불필요한 에너지를 빼야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어요. 시간을 좀 주세요, 마음이든 몸이든.]


띵. 뭔가 한 대 맞은 것 같은 울림이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힘을 빼고, 머무르고, 동작을 했더니 너무 어이없게도 쉽게 자세가 됐다. 그대로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가- 브런치를 열었다.


아직 작가 신청도 안 한, 글 한 줄도 쓰지 않은 내 서랍.


난 글을 쓰고 싶은 거지, 책을 내고 싶은 게 아니었다.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글만 쓰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온몸에 힘을 주고 책 써야지, 무언가 결과가 남게 해야지. 하며 내딛으려고 하니,


당연히 될 리가 없었다.


뭘 쓰지.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걸 쓰면 되었다. 뭐라고 쓰지.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었다. 멋지게 쓸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 난 그냥 쓰고 싶은 거지, 누군가 보여주려고 쓰는 게 아니었으니까. 절대 안 만들어질 것 같던 문장들이 조각조각 맞춰져 문단이 되고 하나의 글이 되었다.


그렇게 글을 저장하고, 작가 신청을 끝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꼬리표가 뚝- 하고 떨어진다.


-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갈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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