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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Mar 20. 2024

나 자신을 외면하는 사람

확신 없는 감정들을 마주하고 싶어질 때.


좋아한다고 믿으면 좋아진다.

싫어한다고 느끼면 싫어진다.


기분은 감정이 되고 그것들은 한데 이어져 확신이 된다.


-

4월


8시간의 공백을 채우는 일은 꽤나 버거웠다. 억지로 눈을 붙이거나 무겁게 발걸음을 떼어 근처 산책을 하거나 하며 천천히 시간을 굴렸다. 도무지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집에서 멍하니 울기만 하다 카페로 향했다.


오전 시간의 카페는 제각각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같은 시간을 다르게 보내는 신기한 공간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막 데려다주고 온 사람,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 나만 아무것도 아니었다. 처음 한두 달은 그것이 서러워 하루에도 몇 번이고 엉엉 울었다. 지금, 내 인생의 결과값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나 서러웠다.


-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공상으로, 꿈으로, 언제든 틈만 생기면 비집고 들어와 사이사이 구석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잠식당했다.

매일 악몽을 꾸고, 전화벨소리가 무서워지고, 지하철에서 몇 번이고 기절할 것 같은 날들은 출근하지 않아도 계속되었다. 어느 날 밤 몇 번인가 뒤척거리다 알았다.

잠조차 나를 쉬게 해 줄 수 없음을.


이 무렵의 나에겐 잠드는 것이 숙제였다.


-

5월


한 달을 눈물범벅으로 지내고 제일 먼저 시작한 건 뜨개질이었다. 정말 무턱대고 실과 코바늘만 사서 독학했다. 점점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방이 되고 옷이 되었다. 뜨개질은 생각을 멈춰주는 유일한 제어장치였다. 머릿속이 일시정지 되는 느낌이었다. 한 단 한 단 뜰 때마다 코 수 세는데만 신경을 곤두세우기 때문이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뜨개질만 했다. 남편이랑 여행 갈 때도 뜨개질거리를 챙겼으니. 말 다 했다.

완성품의 크기가 커질수록, 만드는 속도가 빨라질수록고통뿐인 공상들이 점점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좋았다. 뜨개를 멈추면 다시 되살아 나는 듯했다. 그래서 멈추지 않았다. 계속-계속 일시정지.


순간순간의 일시정지들은 좋은 감정이 되어 없어졌다는 확신이 되었다.



6월


나 이제 괜찮아진 것 같지?


매일 이 말을 달고 살았다. 남편한테도, 진료실에서도.


이제는 잠도 제법 잘 들었고 울거나 감정에 잠식당하는 일도 줄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6월의 나는 신기하게도 제법 괜찮았다.


[아니 당연히 지금은 괜찮지- 근데 네가 괜찮아진 게 아니고 환경이 괜찮아졌으니까 그런 거지]


[그러니까 그게 괜찮아진 거잖아!]


고통이 없어졌다는 확신들은 나를 괜찮아지게 했다.


남편과 선생님의 만류에도 조기복직원을 냈다. 7월 정기인사 때 조용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내 자리를 갖고 그저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싶어졌다. 3개월은- 내가 충분히 메꿀 수 있는 공백이라고 자신했다. 괜찮아졌다고 자신했다. 나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

7월


모든 것들이 예전과 같다. 착착 조립되어 간다. 환경도, 감정도, 그 안에 욱여넣은 나 자신까지.


괜찮음은 나의 조급함이 만들어 낸 허상이었다.


나는 쉬는 동안 한 번도 나를 중심에 세우지 않았다.

나의 중심은 오로지 ‘회사’였다.

-

복직하고 싶어 괜찮아지길 원했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복직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미 몸을 욱여넣은 공간 안에서 어떻게 괜찮아질 수 있을까.


-

그리고, 10월


아무것도 모를 때는 내가 맞지 않는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 공간은 그대로지만 나는 자란다. 그것이 마음이던지 생각이던지.


나는 달라졌다.


내 전부였던 공간은 이제는 몸을 비틀고 꺾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알았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렇게 살아왔다.


-난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맞지 않아. 예전에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때의 나는 괜찮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야. 지금 나는 무서워. 밑도 끝도 없이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도 수화기 너머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여자도 다 무서워. 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매일 걱정하고 무서워하면서 자고 일어나는 하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난 너무 지쳤어.-


 어느 날 퇴근길에, 나는 이 모든 고통과 아픔의 시작점을 마주했다.


어떤 기분인지 정의되지 않았던 덩어리들은 무서움이 되고 한데 뭉쳐져 고통이 되어있었다. 그 커다란 눈덩이를 외면해 왔다. 확신이 되지 못한 무서움은 내 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제발 자신을 마주해 달라고 말했지만 나는 끝끝내 쓰러질 때까지 이를 악물었다.


-

나를 아프게 한 것은 나였다.


-


덧붙임

제 이야기를 써나가는 거라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당시의 고통들을 끄집어내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다행히 옅어진 기억들이라 에너지 소모가 그렇게 크진 않았었는데 이번 김포시 공무원분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괜히 저 또한 요 며칠 힘든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안 좋은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니 글자로 옮기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또 다른 안 좋은 일이 전해지지 않기를- 정말로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래서 이번 화는 정말 힘겹게 올렸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이 나중이 또 한 뼘 자란 저에게 어떻게 읽힐지 모르니까요.

약간의 스포 아닌 스포라면 중후반부부터는 조금씩 안정되는 저 자신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혹시 글 속의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계신 분들 있으시다면 제 글과 함께 같이 안정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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