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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Mar 13. 2024

평범해지지 못하는 사람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주저앉을 수는 있어서 다행이다.



[평범하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바뀐 업무는 야근을 종종 해야 하고 4명의 상사와 한 팀이 되어 일하는 그다지 선호되는 자리는 아니었다. 몸이 안 좋은 걸 부서에서 알고 있으니 조금 편한 자리를 받고 싶었던 마음도 내심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할 줄 아는 업무여서, 상사들이 연차가 있는 사람을 원하니까, 등등의 이유를 붙여가며 사무분담표 속 그 자리에 내 이름을 끼워 넣을 이유를 만드는 담당자의 설명에 반론할 힘도 없었다. 아이러니 한 건 만약 내가 정말 사무분담을 배려받았다 해도, 기쁘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평범한 사람은 배려받지 않으니까.


이도 저도 못하는 인생이다.


새로운 자리, 새로운 사람들과 익숙해질 틈도 없다. 했었던 업무지만 바뀐 규정들을 숙지해 가며 매일매일 쌓이는 사건들을 쳐내기 바쁘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화소리가 두려워졌다는 것.


전화는 직접 대면하는 것과는 또 다른 두려움이다.


오히려 얼굴을 마주 보지 않으니 전화 너머의 사람은 쉽게 격해졌다. 목소리가 커졌다. 내가 아무리 설명하고 설명한다 한들 어린 여자의 목소리를 ‘그냥’ 불신하는 것이 현실이다. 회사 전화가 무서워지니, 내 핸드폰 진동소리도 겁이 나 어느샌가 무음으로 돌려버렸다.

따르릉-소리가 울릴 때마다 내 자리 전화가 아니어도 심장이 떨렸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제일 괴로운 건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 전화벨이 나에게 돌아왔을 때다. “담당자가 자리 비워 대신 받았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말에 순순히 납득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거의 없다. 언제 전화해 줄 거냐, 담당자는 왜 자리를 비우냐, 당신이 해결하면 되지 왜 또 기다리라는 거냐, 이름이 뭐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짜증 섞인 감정을 수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받는다. 쌓이고 쌓여 눈 밑까지 차오른다. 한참동안 목소리들을 받아내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곧장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 바로 물을 내린다. 물소리와 구역질하는 소리가 섞여 귀를 찌르고 눈 밑까지 차오른 감정들이 흘러넘친다. 공황과는 또 다른 정의되지 않은 몸의 반응이 두렵다. 이것 또한 익숙해져야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나.


정말 이도 저도 못하는 인생이다.


-


자리 비울 거면 이야기를 하고 가던가, 전화를 돌려놓고 가던가 하세요. 괜히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네? 아니 선배, 내가 자리 한 시간 비운 것도 아니고 잠깐 비웠는데 전화 올 수도 있지. 전화가 매번 오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인데 대신 받아주는 게 어려워요? 서운하네.


네. 나는 어려우니까 자리를 비우지 말던가 전화 올 일 없게 하던가 어쨌든 내가 신경 쓸 일 만들지 마요.


날카롭다.


수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받아낸 감정들은 애꿎은 사무실 사람에게 뱉어진다. 순간 미안함이 스쳐가지만 잠깐이다. 무슨 일 있어요? 몸 안 좋아요? 조퇴하고 가서 쉬어요. 실무관님이 내 일 대직도 못하면서 그런 말 하지 마요. 짜증나니까. 감정의 오물들이 그렇게 조금씩 빠져나간다. 모질게 말할수록, 더 직설적으로 말할수록, 못되질수록.



나는 나를 고립시킨다.



[트라우마성 공황발작 직전의 증상 같네요. 비상약을 더 드릴게요. 약도 조금 늘려보죠.]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닌데.


연차 쓰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 출근하면 3일을 내리 꼼짝을 못 했다. 아마 한 달을 그렇게 하라고 해도 충분히 해냈을 거다. 어쩔 수 없는 배고픔에 음식을 시켰다가 초인종소리에 몸을 벌벌 떨며 정신 못 차리는 날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먹지도 씻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죽인다.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수없이 질문을 던져봐도 답은 오지 않았다. 이제는 출근길 사람들 각자의 목소리가 다 나에게 화내는 것만 같다. 귓구멍을 파고들고 숨구멍을 막는다. 에어팟 볼륨을 크게 키우고 앞만 보고 걸어도, 정말 신기하게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당연하게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카페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어려워졌다. 예전엔 백색소음에 불과했던 것들이 필요 이상으로 또렷하게 들렸다. 길 가는 사람이 갑자기 나를 붙잡고 화낼 것만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가족끼리 외식하는 날도 주문 외에 다른 얘기를 꺼내는 부모님 옆에 있노라면 몸이 벌벌 떨렸다. 엄마아빠가 금방이라도 직원에게 화를 낼 것만 같았다. 직원은 어느샌가 내가 되고 부모님은 민원인이 된다. 제발,제발 그러지 마. 몰래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이를 악물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다.


모든 일상이 고통으로 덧씌워졌다.


나는 정말, 정말로 고립되었다.


출근하면 곧바로 귀마개를 꼈다. 그리고 곧장 일을 시작했다. 언제 또 못 나올지 모르니 최대한 많이, 빨리, 완벽하게 해야 한다. 출근하는 날은 일부러 야근을 했다. 두세 번씩 검토한 후 제일 마지막에 사무실 불을 끈다.


야근은 싫었지만 야근 후 지하철이 좋았다. 붐비지 않는 공간 속 피곤에 지쳐 조는 사람들이 많은 저녁 지하철이 좋았다. 목소리라고는 안내방송뿐. 집 밖에서 유일하게 숨이 편안한 15분- 그 15분을 좋아했다.



그렇게 예민하고 게으르고 점점 화가 많아지고 밖에 나가는 게 힘든, 가족조차도 버거워하는 사람은


어느 날 퇴근길에

그 15분 속에서 곪아 터져버렸다.


-

나는 나를 인정하지 못했다. 감추고 싶은 나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는 나에게 항상 제3자였다.

사실 곪아가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도 외면했다.


그렇게 수없이 외면하다 결국 버텨내지 못한 나를,


그제서야 인정해버렸다. 그 사실이 아팠다.


나는 아픈 사람이었다.


-


저, 휴직계 내겠습니다.


입 떼는 것만 어려웠지 나머지는 매우 순조로웠다. 진단서를 다시 떼고 휴직원을 작성하고. 짐을 정리했다. 휴직기간 전까지는 병가를 냈다. 예비남편 트렁크에 짐을 넣고, 가만히 바라봤다. 어딘가로 움직이는 짐이 아니라 우리 집으로 가는 짐. 이제 내 자리는 없다.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다. 이 짐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올 수 있을까.


사무실 책상이 없어진 나. 내 예상에 없던 나. 평범해지지 못하는 사람이 된 나. 그런 나는 며칠을 그렇게 내리 잠만 잤다. 이 정도 잠은 허락해주고 싶었다. 그냥 나한테, 그정도 보상은 주고 싶었다. 신기하게 막상 모든 절차가 끝나고나니 모든것들이 나와 관련없는 것처럼 옅어졌다. 내일의 두려움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으로 되었다. 신기하게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으로 만족이 되었다.


이도저도 못하는 인생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느 쪽을 선택하지도 못했다. 내가 왜 이렇게 변한건지 알아내지도 못했다. 다 그대로 둔 채로 멈춰버렸을 뿐. 생각하며 서 있을 힘 조차 없어 주저앉았을 뿐.


그래도, 겨우 주저앉기까지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또한 선택이라면 선택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주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내 편이 되어주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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