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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모션 Nov 17. 2019

브런치와 함께한 한 달

잡담. 2

제7회 브런치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응모하기 버튼만 누르니 바로 응모가 되어서 조금 당황했지만 어찌 되었든 응모가 되었다. 괜히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혼자 호들갑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지 한 달이 되었다. 브런치를 추천받고 몇 달을 마음에만 담아두었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기처럼 썼던 글을 몇 편 모아 작가 신청을 했지만 가차 없이 탈락하고 말았다. 사실 너무 충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나 작가로 받아준다고 생각했다. 내가 언제 책을 내달래 그냥 내가 쓴 글 다른 사람과 공유 좀 하겠다는데 그걸 또 그리 똑! 떨어트릴 일인가 싶어 며칠을 브런치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심 형편없는 글이지만 마음을 넣었는데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흥칫뿡' 했나 보다.


며칠을 안 들여다보는데 자꾸 생각이 났다. 이게 뭐라고.

하얀색 화면에 글자 좀 쓴 건데 이게 왜 이리 하고 싶은 건지.


그래. 나는 이게 왜 하고 싶을까. 왜 글을 쓰고 싶을까.

누구를 위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려고 했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지호와의 일을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때면 꼭 한 명씩 글로 써보라는 말을 했다. 말하는 건 재미있게 할 수 있었지만 사실 글은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어디에 글을 써내면 늘 검색에 검색을 더하여 온갖 짜깁기로 채웠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읽었던 책 한 권이 마음을 흔들었다.


지금은 절판

살아내는 삶 시리즈에도 인용 글귀가 있던 책 "존재한다는 것의 행복- 앙투안 갈랑"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포스트잇을 수십 장을 붙이고 줄을 긋고 몇 번을 다시 봤다.

소아과 의사였던 아버지가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의 변화를 슬프고도 담담하게 써냈다. 이제 마흔이 된 아들을 바라보며 여든을 넘긴 아버지는 아들이 결코 그의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책을 소개했다.


이 책에는 흔히 장애아이를 키우면서 나오는 위인 같은 부모의 이야기가 없다. 그저 아이를 만나면서 느꼈던 혼돈과 의사임에도 원인조차 밝힐 수 없었던 죄책감들이 가득하다. 그 죄책감을 덮고 아이를 받아들인 후에도 과장된 행복보다 늘 슬픔과 함께하는 기쁨을 아들인 토마에게 남겼을 뿐이었다. 그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마지막 편지를 쓸 시간이 왔구나. 너에게 쓴 이 편지들은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하지 못했던 말을,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하게 해주는 훌륭한 매개물이란다. 하지만 특히 너에게...(중략). 이 편지가 끝나더라도, 상처 입은 내 아들, 덩치는 크지만 마음은 어린아이인 너에 대한 내 사랑은 끝나지 않는단다. 네 엄마와 내가 먼지와 별들 속으로 멀리 사라진 후에도 너에 대한 사랑은 영원히 남아 있을 거야."

내 일기라고는 했지만 온통 지호 얘기였다. 지호가 별일 있으면 슬프고 걱정되고 별일 없으면 기쁘고 평안했다. 그 감정들을 담아 글로 썼다. 어쩌면 그런 내 마음이 한 글자 한 글자 써지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시원스레 얘기할 수 없었던 먹먹함을 지워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써진 글들은 사실 지호와 함께 한 소중한 추억이기도 했다. 그 추억을 남겨야 할 의무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것이 지호에게 살아갈 힘이 될 것이다.

Photo by Christin Hume on Unsplash

다시 브런치를 열었다. 우선 10편의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시작했다. 글 쓰는 목적이 명확해지니 처음보다 조금 더 정돈되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디서 본 듯한 문구와 너무 긴 문장, 한정된 어휘 등이 초보임을 여실히 드러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게 지금의 나의 마음이고 수려한 문장으로 표현한 들 마음이 프로같이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브런치 프로젝트는 하나의 도전이라는 어떤 중대한 결심보다 참여에 의의를 둔다는 지극히 소박함으로 결정했다. 브런치와의 한 달이 친구와의 수다보다 진심으로 더 즐거웠기에 나누고 싶었다. 수많은 작가분들의 글을 읽으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더 노력하고 싶어 졌다. 글쓰기를 배우는 모임에 나가보려고 한다. 사는 곳과 시간이 제한적이라 모임 선택이 쉽지는 않지만 배워야겠다는 욕심이 든다. 앞으로와의 브런치가 조금 더 정연하게 다듬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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