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던 날 눈이 어른 무릎까지 와서 이름에 눈 설(雪) 자를 넣었다던 아버지의 말은 뻥을 조금 보탠듯해도 듣기 좋았다. 그래서 겨울을 담고 있는 내 이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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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찬바람이 돌면서 나는 약간 조증 상태가 된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기점으로 절정으로 치닫다가 1월부터 천천히 하향곡선을 그린다. 주로 오전에 활동하고 오후면 집으로 숨어드는 나도 연말이 되면 저녁에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 알록달록 트리 장식과 사람들의 움츠러든 어깨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콧김과 길거리 포장마차의 어묵 국물 냄새까지.. 모든 게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겨울의 풍경과 크리스마스 장식을 사랑하는 내게 '러브 액츄얼리'는 원픽으로 꼽을 수 있는 영화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인이 등장하는 건 아무리 재밌는 드라마나 영화라도 못 보는 성격이라 원래 만화와 로맨틱 코미디만 즐겨보는데 거기에 크리스마스라니.. 어느 장면 하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월이 되면 캐럴을 틀고 노란 귤 한바구니와 함께 꼭 러브 액츄얼리를 다시 보는 것으로 나만의 의식을 치르며 겨울을 맞이한다. 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마음은 마흔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으니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똑같을 것 같다. 아! 마흔이 되어서 귤은 먹지 않게 되었다. 신게 싫더라. 마흔의 입맛인가 보다.
여러가지 행복의 모양. 완벽한 것만 행복한게 아니다. by naver movie
하얗게 눈이 오면 땅 위에 깔렸던 더러운 것들도 잠시 순결한 듯 잠잠해진다. 잠깐 동안 모든 걸 잊게 만드는 마법. 누구나 더 따뜻해져도 되는 온도. 움츠러들어 파고드는 몸짓. 그 모든 걸 아우르는 캐럴과 조명.
매년 오는 겨울이 올해도 온 게 마냥 뿌듯하여 잡담을 해본다. 더 행복해보자 이번 겨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