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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모션 Apr 26. 2020

부모가 되어가는 이야기

나의 또 다른 시작

33번째 겨울을 맞던 그해 아침은 유난히 춥고 맑았다. 새파랗다 못해 하얀 공기는 콧속을 넘어 폐 깊숙이까지  파고들었다. 그날 그 시간의 공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한 번의 유산 뒤 3년이란 시간을 기다려 온 아이. 그 아이를 만나러 가는 그날은 이상하리 만치 행복했다. 마치 다시 가져보지 못할 느낌처럼.


늘 씩씩했던 우리 부부는 그날도 따라오시겠다던 어른들께 유난스럽고 싶지 않다고 세상 쿨한척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수술 전 절차를 모두 마친 후 둘이서만 찍는 마지막 사진이라고 당당히 브이자를 그린채 찰칵 순간을 남겼다. 그리고 30분 뒤 나의 아기와 남편은 구급차를 타고 있었고 나는 의식이 희미한 채 피를 쏟고 있었다. 아기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병원에 있다 면회를 마치고 산부인과로 돌아온 남편은 친정엄마와 함께 있는 의식이 돌아오지 못한 나의 모습까지 홀로 견뎌야 했다. 순식간에 사랑하는 사람 둘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의 기억은 우리가 둘째를 갖지 않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고난과 축복이 그 짧은 순간에 뒤바뀔 만큼 이리도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던가.

불행은 늘 불현듯 찾아온다는 그 말이 나의 축복의 그날에 찾아와 버린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축복.

우리의 사회가 말하는 평범한 가정의 완성인 자녀가 나에게 희귀성 난치병을 가진 장애인이란 기나긴 이름표를 앞에 달고 찾아왔다. 나도 꿈꾸는 가정, 결심한 부모, 바라던 자녀가 있었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여겼기에 모든 상황들을 감안해서 꿈꾸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았다.

전혀 내가 모르던 세계, 알고 싶지도 않았던 뭔가 이상할 것만 같은 장애아 부모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되어버린 것이다.


역시나 그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울퉁불퉁 구불구불,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길은 어떤 정확한 목적지가 있지도 않았다. 그저 조기개입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치료실을 전전했고 조금 더 보통의 아이를 닮아가길 또 따라잡길 바라며 눈앞의 내 아이를 보지 못한 채 한참을 내달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우리의 마음은 만신창이였다. 그런 우리를 보고 누군가는 말했다.

"대단하다. 나는 그렇게 못했을 거야. 네가 견뎌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주신 걸 거야"

그 말에 우쭐한 마음으로 착각에 빠진 적도 있다.

'그래 잘하고 있는 거다. 우리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은 없지.'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보았던 클라우드 사진 속의 어린 아기는 내 머릿속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분명 내 아기인데. 왜 저때 저 맑고 예쁜 두 눈과 미소를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까. 바쁜 치료실 일정과 먹이고 재우고 씻기느라 그랬다기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는 나를 보고 웃고 있었는데 나는 다른 아이만 꿈꾸며 시선을 돌리고 있었구나. 꿈속의 아이를 포기해야만 눈 앞의 아이를 사랑할 수 있었다던 어느 작가의 고백을 나도 실행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내 아이를 잠잠히 들여다보니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우린 조금 자유하기로 했다. 치료실을 쉬고 일상을 느리게 보내기로 했다. 무언가를 해주지 않는다는 죄책감을 벗어나, 치료의 때가 있다는 걱정을 넘어 지금의 순간을 살아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심심한 듯 편안한 날들이 지나니 아이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눈이 열렸다. 서로를 슬픔이나 고난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어느 순간은 한없는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리 부부가 사라진 이후 아이가 홀로 살아내야 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슬프고 괴롭다. 우리가 사라졌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 아이가 이해는 할까. 우리 아이가 떠날 때는 누가 배웅을 해줄까.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버거운 이 생각도 결국은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로서 우리가 해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결론은 아이와 함께 사는 동안 열심히 즐겁게 살아내는 것, 버텨내는 것이었다. 고난을 버티는 힘은 찰나의 행복했던 기억이라 믿는다. 사실 우리 부부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늘 실수투성이고 아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여지없이 드러내 주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매일을 담담한 듯 행복하게 살아낸다. 느리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내는 아이에게 존재의 기억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되는 부모이고 싶다. 이 아이로 인해 열심히 살 힘을 얻고 늘 고민하고 기도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것만으로도 고난으로 찾아왔던 우리 아이는 진짜 부모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축복이었음을 고백한다. 이것이 내가 부모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된 나의 이야기이다. 읽고 있는 모두들 함께 서투르고 부족한 우리를 응원해주시길.


이글은 EBS<나도 작가다> 공모전 출품용으로 쓴 글로 저의 발행 글 살아내는 삶 시리즈를 축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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