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에서. 3
며칠째 신랑은 마당에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넓지도 크지도 않은 마당에서 뭘 그리 하는지..
파고 덮고, 나르고 쌓고...
국이 식을 동안 들어올 생각을 안 하기에 잔소리 좀 했더니 냉큼 들어와 앉아 후루룩 식사를 마시고는 예의상 눈치를 조금 보다 또 슬금슬금 신발을 신는다.
딱 저기까지만 한다며 멋쩍게 웃길래 눈꼬리를 치켜뜨려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와버렸다.
"일부러 국 식혔어? 마실라고?"
얼굴도 새까맣게 타서는 몸이 힘들 텐데도 생글생글 웃고 다니는 게 어지간히 재밌나 보다.
이사 와서 내내 지호와 시간도 못 보낸 채 마당에서 살길래 좀 퍼부을까 했더니만 저 얼굴을 보니 조금은 기다려줘야 할 듯하다.
주변 지인들이 학교에서 꽤나 거리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오니 왜 가까운데 놔두고 그렇게 멀리 갔냐고 묻는다.
왜겠는가....
우리 인생의 대부분의 정답인 돈이지.
학교 주변에서 이 정도의 집을 구하려면 서리 집의 4배는 줘야 한다. 그래서 조금씩 멀어진 곳이 이곳 서리였다.
이 단순한 걸 자꾸 물어대니 할 말이 없다. 구구절절 얘기하자면 관심도 없을걸 알기에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됐다고 얼버무리고 만다.
물론 가격만으로 이 집을 결정한 건 아니다. 가격이 싸다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집을 덜컥 계약할 만큼 우린 어리지 않기 때문이다.
신랑이 주택에 살면서 하고 싶은 최종 목표는 농사이다. 지금은 안성에서 하우스한칸, 노지 조금을 빌려 사과대추나무를 키우고 있지만 본인의 땅에 농사를 하는 것이 꿈인 사람이다. 그래서 농지가 딸린 허름한 농가주택을 알아보다가 이 집에 마음이 꽂혀버렸다.
우리 집은 아주 허름하지도 그렇다고 고급스럽지도 않은 딱 보통의 집이다. 늘 어중간한 걸 좋아하는 나도 이 집의 그 보통스러움이 마음에 들었다. 구옥을 싹 뜯어고칠 엄두도, 고급스러운 집의 잔디를 밟을 용기도 없는 우리에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이 집에 농지는 딸려있지 않다. 하지만 근처에 농지로 임대할 만한 제법 큰 땅들이 있어서 신랑의 마당정리가 끝나면 알아보려고 하고 있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니 지호의 담임선생님은 지호 아버님이 어머님의 지지를 받아 참 행복하시겠다고 하셨다. 선생님도 주택으로 가고 싶으신데 배우자께서 반대하신다며 어머님이 큰 결정 하셨네요 라며 칭찬을 해주셨다. 글쎄.. 내가 신랑을 지지했나.. 내가 무언가 큰 결심을 하고 왔던가?
우리는 늘 대화를 많이 하기에 서로가 원하고 바라는 길을 알고 있다. 접점도 있고 완전히 다른 영역도 있지만 (마당의 닭장이나 가마솥 같은..) 우리의 규칙은 상대방이 정말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는 건 그러니까 내가 큰 결심을 하며 희생하고 양보할 만큼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저 우리의 가고자 하는 그 길에 발걸음을 같이 뗀 것뿐이다.
이사 오고 나서 제일 많이 들은 얘기는 '나도 주택 살고 싶은데' 였다.
많은 이들이 꿈꾸지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나도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그리 용기를 냈냐고 하신다면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서라고 답하겠다.
어느 드라마에서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이 건강하고 젊은 날. 우리 가족은 시간을 아깝지 않게 보내고 있는 것뿐이다.
물론 이 집에 와서 가장 행복한 건 아빠다. 그가 지고 있는 가장의 무게와 아비로서 품는 슬픔이 이 공간에서만큼은 가벼워지고 행복해진다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호도 오늘 아침은 방안의 장난감을 한 개씩 가지고 마당에 나갔다 들어왔다를 스무 번쯤 하며 놀았고 나는 읍내에 장 보러 간 두 부녀와 인사하고 글을 쓴다.
오늘 하루도 각자의 방법으로 슴슴하게 행복한 시간이 되리라는 기대가 온 마당을 감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