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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모션 Oct 26. 2020

책이 나오다

슬로우모션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적는다.

코로나 시대라는 해괴망측한 시절을 보내며 시공간이 모두 한정된 특이한 경험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나갈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갇힌 시간은 머리가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한계가 느껴질 즈음 불현듯 살아내야겠다던 다짐이 떠올랐다.

그렇지.. 난 살아내야지 그것도 즐겁게.. 최대한 생명력 있고 활기차게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이지.

그렇지만 이 제약된 환경 속에서 난 어찌해야 즐겁게 살아낼 수 있을까..


결국은 글이었다.

비루한 글솜씨지만 쓰고 싶었고 이번엔 무언가 결과물을 얻어내고 싶었다.

이 시기를 나는 잘 버텨냈노라하고 증명할 수 있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


그리하여

책을 냈다. 내 돈으로. 내가 만들어서.

브런치공모전에서 광탈하고 수상작을 보니 내가 너무 브런치를 우습게 봤다는 걸 알았다. 브런치 수상작은 프로필에서 직업키워드를 넣을 수 있는 자들만의 무대였다. 절대 나같이 어디에도 키워드가 없는 사람의 평범한 글을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브런치북으로 묶었던 지호와의 십 년인 슬로우모션을 다시 손을 봤다. 짧게 단편적으로 쓰던 글과 다르게 하나의 긴 호흡으로 끌고 가야 하는 책 작업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따로이지만 연결된 스토리로 만들며 결론을 내야 하는 스토리 작업은 역시나 난 아마추어임을 여실히 깨닫게 했다.


4주간 책 만들기라는 클럽 프로그램을 신청해놓았기 때문에 첫 수업 전까지 스토리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다시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도저히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것 같은 나의 글솜씨.

아무도 관심 없을 것 같은 우리의 이야기.

비난할 것 같은 소토스증후군이라는 희귀질환과 장애인을 앞세운 주제.


수업료를 환불을 받을까.. 그저 브런치에 지지를 해주는 이가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그만둘까 잠을 설칠 정도로 망설였다. 수업일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환불금액 또한 줄어들고 있었다.

돈 때문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정말?)

수업일이 다가오자 결국 마지막 챕터를 써야겠다 마음먹었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붙들고 내가 이걸 왜 하고 싶었는지 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지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마지막 슬로우모션 N차 챕터를 써 내려가며 나는 평화로워지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책에 써 놓은 것처럼 살아내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함도 분명한 목적이었지만 그보다 분명했던 건 나는 글을 쓰므로 즐겁고 가치 있음을 나타내고 평안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글의 수준이나 주제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계약금을 받고 책임감을 부여받은 프로젝트도 아니었기에 누군가의 비난을 받을 수 없다 확신하게 되었다.


4주간 책 만들기 수업은 속도가 빨랐다.

모인 8명 중 내용을 완성한 이는 별로 없었다. 나는 너무 충격이었다.

나는 가기 전날까지 내용을 마무리하고, 전체를 2번이나 소리 내어 읽으면서 문장을 수정하고, 맞춤법 사전을 3번 돌리고도 오타나 나와 좌절한 채로 첫 수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내가 오버했구나..

요새의 젊은이들은 자신을 표현하며 드러내고,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는 데에 지나친 걱정과 근심을 앞세우지 않아 보였다. 그저 할 수 있는 곳까지 하면 되었고 형식에 관해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쫄아있던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며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 내 돈 내고하는데 무슨 상관이야..


마지막 주차에는 인쇄본이 나와야 했지만 추석 연휴가 이어지며 그 뒤로 시간이 지나 첫 책의 인쇄본이 나왔다.

책 표지와 종이를 고르는데 샘플본은 3권이나 했는데도 마음에 완전 쏙 들지 않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멈추었다. 마음에 쏙 들고자 하는 마음.

나는 초보고 처음이기에 부족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서야 인쇄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과감하게 300부를 인쇄했고 배본사나 총판을 낄 정도는 아니라 차를 몰고 가서 책을 실어왔다.

책을 본 신랑은 나보다 몹시 좋아했고 책을 읽다가 얼마 못가 펑펑 울어버렸다.

그때 그 감정이 훅 밀려와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되었다.

내 책은 성공이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하나 지웠고

우리 가족의 꿈에 또 한 발짝 다가갔고

지호에게 한 권을 남겼으니

이걸로 이 책은 이미 성공이다.


SNS 계정과 네이버 스토어에 책을 오픈하고 지인들이 고맙게도 책을 사주었다.

어제는 처음으로 모르는 이가 책을 주문했다.

아주 상관없어 보이는 이가..


앞으로 이 책이 내 방에 계속 있을지 누군가의 서재에 꽂히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잘했다.

이 잘한 짓을 앞으로도 쭉 해 볼 생각이다.

물론 내 돈 내고서..


이제 또 한 번 뻔한 결론으로 마무리 지어볼까 한다.

나는 써서 인쇄했고 그대는 쓰고 인쇄하지 않았을 뿐이다.

쓰고 읽기 말고 인쇄하시라.

그리하면 주변에서 대단하는 소리를 최소 30번은 넘게 들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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