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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Aug 11. 2016

세상을 지탱하는 아름다운 룰 하나

다음 사람에게 베풀어 주세요.


미스터 디엥 이야기

손미나 작가의 첫 번째 책인  <스페인, 너는 자유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손미나 작가가 대학생 시절, 스페인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 문화충격과 향수병, 언어로 인해 갖은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잠시 머리를 식히러 프랑스로 가게된다. 그때 비행기에서  옆좌석에 탄 흑인신사에게 손미나 작가는 자신의 처지와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알고보니 그는 세네갈 거부였다. 이를 인연으로 세네갈 거부는 손미나 작가에게 큰 호의를 베폰다. 좋은 호텔에 숙소를 잡아주고, 택시를 대절해 어디든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저녁이면 파티에 초대해 아주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준다. 이런 무조건적인 호의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손미나 작가가 나중에 묻는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잘 해주신 건가요? 그러자 세네갈 거부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렇게 답했다. 


" 난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 그런데 난 사실 세네갈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무척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내게 공부를 한다는 건 매우 사치스러운 일이었지만 난 꽤 총명하고 꿈도 많은 아이였지. 어려운 환경을 딛고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칠 때마다 내게는 참 힘겨운 순간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누군가가 나타나 아무런 조건없이 내게 호의를 베풀고 용기를 주곤 했단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거야. 

그래서 나도 언젠가 성공하면 젊은 시절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어 주어야겠다고 결심했거든. 그리고 며칠 전 비행기 안에서 만난 너에게서 그 모습을 보았다. 꿈을 향해 가고 있는 젊은이가 좌절하고 절망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지. 마음속에 꿈을 간직한 젊은 사람은 아무런 조건 없는 호의를 받을 자격이 있는 거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희망이 없는 얼굴을 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무엇이 너를 그리 괴롭고 힘들게 했는지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덧붙였다. 신세를 갚고 싶다면, 내가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또 다른 젊은 누군가가 꿈을 향해 가는 길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길 바란다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야기가 감명깊기도 했지만, 나 역시 그와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이 신세를 어떻게 갚죠?

2001년 겨울, 나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영남대로를 따라 무전여행 중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과 육체적 고통으로 매일같이 울었다. 그러면서도 포기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언제나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번도 배 곯지 않고, 한뎃잠 자지 않고 하루하루 기적처럼 살아갔다.


열흘 째 되는 날, 마침내 목적지인 부산을 눈 앞에 두었다. 부산까지 가려면 큰 고개를 4개나 넘어야 했는데, 내 고물자전거로 그걸 넘기엔 무리였다. 허나 그런 거 저런거 따질 틈은 없었다. 고개를 하나 넘고 그보다 더 높은 고개를 오르는 참이었다. 느낌상 경사 60도는 될 것같은, 아주 가파른 고개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고갯길에서 6단밖에 없는 고물자전거를 기어변속하며 마구 밟아댔다. 그런데 갑자기 ‘펑’하더니 발밑이 허전해졌다. 헉!!!! 이럴수가.  


자전거 체인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 게 아닌가! 인적도 없고, 지나가는 차도 없는 고개 한 가운데였다. '어떻게 할까' 궁리해봐도 딱히 방법이 없어서 터진 자전거를 일단 끌고 갔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용달차 한대가 지나갔다. 젊은 아저씨 둘이 있는 트럭이었는데,  내 상황을 듣더니 근처 자전거를 고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많이 고마웠다.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라, 자전거포는 없었고 겨우 찾은게 원동기- 경운기를 고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영화 배우이자 영상번역가인 '시라소니'와 똑같이 생긴 아저씨를 만났다. 처음에 아저씨는 자전거를 고칠 수 없다며 냉정히 손을 내저였다. 하지만 내가 서울에서 여기까지 자전거타고 왔다고 하자, 눈빛이 달라지셨다. 나와 자전거를 한번씩 보시더니.... "그럼 한번 손이나 봐주마" 했다. 하지만 한번 봐주는정도가 아니라 자전거를 싹 고쳐주었다. 1시간동안 체인을 갈고 브레이크며, 다른 곳 여기저기 손을 봐주셨다. 브레이크도 조여주시고, 기름칠도 해주시고, 안장도 조절해주셨다. 


“학생,앞으론 이거 타고 다니지 마. 자전거가 너무 고물이야. 어떻게 이런 걸 타고 온거야? 어떻게 이걸 다 타고 올 생각을 했지? 고장난 데가 너무 많아. 서울가면 다시 싹 점검받으라고.” 

“넵!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너무너무 감사해서, 내가 비상금으로 꼬깃꼬깃 가지고 있던 1만원을 드리려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손을 휘휘 내젓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 은혜는 다음 사람에게  갚으라고. 다른 사람이 어려울 때 도와주면 돼."     


은혜는 다음 사람에게 갚으라고., 이 한마디가 내내 잊히지 않고 가슴에 남았었다.

그런데 오늘 손미나 작가의 책에서 그 한마디를 다시 만난 것이다.  


세상을 지탱하는 멋진 룰 하나

뉴스에선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친구를 죽이고, 강간살해하고... 온통 험한 이야기 뿐이다. 하지만 직접 다녀보니 내가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대가 없이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너무 많은 분들이 나를 친자식처럼 재워주시고, 먹여주셨다. 청하기만 하면 도울 준비가 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세상은 그래도 돌아가나 보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룰들로 말이다.

"나 말고, 다음 사람을 도와줘. 그게 보답하는거야."


누군가 내게 "큰 일을 하시오."라고 내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큰일’은 남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 역시 가슴에 품고 있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이렇게 도와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대체 이 신세는 어떻게 다 갚죠?라고 말하면, 나도 똑같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은혜는 내가 아니라 다음 사람에게 갚는거에요. 누군가 어려울 때 도와주면 돼요."


정말 참여하고 싶은 룰이고, 릴레이다. 그 아름다운 릴레이에 나도 꼭 끼고 싶다. 

그 날을 위해 오늘 하루도,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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