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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하려고 하지마.

완벽이란 놈에 발목 잡혀 한 걸음도 못 나갈때

by 김글리

글쓰다 보면, 한 글자도 안 써지는 때가 있어.

'잘 써야 하는데' 이 생각 때문에, 생각만 하느라고 한 자도 못쓰는거야.


오늘도 그런 날이었어. 부담감과 잘해야한다는 생각이 날 짓눌렀지.

내가 왜 책을 쓴다고 했던가, 머리를 쥐어뜯는데

퍼뜩, 칠레가 생각났어.


칠레 여행 중에 패러글라이딩을 한 적이 있었거든.

칠레 북부에 해변도시 '이끼께 Iquique'가 있는데, 여기가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명소 중 하나라고 하더군.

이런 걸 들으면 놓칠 수 없잖아? 전혀 계획에도 없던 패러글라이딩을 해보기로 했지.

내가 가진 현금을 모두 털어보니, 딱 할 수 있겠더라고. 삼십만원쯤 했던거 같아.

Iquique_c_Alexi Ledesma.jpg 이끼께 도시 전경 © Alexi Ledesma

이끼께가 패러글라이딩 명소가 된건, 적당한 바람과 사막과 바다가 함께 있기 때문이야.

전망도 멋지고, 날 수있는 기후조건도 딱이지.

저 뒤로는 세계에서 가장 매마른 땅인 아따까마사막이, 앞으론 태평양 바다가 펼쳐져. 보여?

(그런데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3대명소가 터키며 스위스며 네팔이며 세계 곳곳에 있더라구.

그냥 우리가 3대 명소다, 라고 우기면, 그만인가봐.)


번지점프는 여러번 했지만, 패러글라이딩에 처음이었지.

차를 타고 패러글라이딩 장소로 가면서, 교관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사전 설명을 해줬어. 듣다보니, 절벽에서 뛰어내리는데 다칠 위험도 있어서 꽤나 걱정이 되더라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지. 그나마 다행인건, 혼자타는게 아니라 교관과 같이 탄다는 사실이었지.


SAM_5681.JPG 내 짝꿍 대머리 교관과 함께 찰칵!

우주복 같은 패러글라이딩 수트를 입고 패러슈트까지 매고 나니 준비 끝!

내 짝은 대머리 교관이었어. 내가 앞에, 대머리 교관이 뒤에 타고 우린 언덕에서 내달려갔어.

하나, 둘, 셋! 순간 쑤웅~~ 하면서 내 발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하늘 위로 위로 올라갔지.

빙글 빙글 돌면서 점점 높이 치솟는데, 내 발 아래로 도시가 쪼그맣게 보이더라고.


SAM_5694.JPG 내 두 발 아래, 도시가 있소이다!

죽을 각오로 뛰었던 번지점프보단 덜 무서웠지만, 나도 모르게 몸이 얼었었나봐.

뒤에 같이 탄 교관이 날, 툭 쳤어.


"이봐, 너무 잘하려 하지마. 그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온 몸이 굳어지거든.

그냥 느껴봐. 이 바람을. 힘빼면 즐길 수 있다구.^^


후, 오케이. 알았어.

나는 심호흡을 한 크~게 하고 바람을 느껴보려 했어. 뭐, 잘 되는지 어쩌는지, 긴장은 풀리더라.

SAM_5782.JPG 이카루스 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잘 날고 있어!

하늘을 날고 있자니, 마치 이카루스가 된 기분이었지. 그의 날개는 녹아 추락했지만, 내 날개는 녹지 않고 잘 버텨줬어. 덕분에 빙글빙글 하늘을 돌면서 거의 토할 때까지 타고 내려 왔지. 무려 40분동안이나.

미션, 클리어!


SAM_5790.JPG

잘하려는 생각에 온 몸이 굳어지고, 머리도 굳어지고,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전혀 아무것도 기능하지 않을 때.

가끔, 그 교관 말이 떠올라.

특히 오늘 같은 날.


내가 겉으론 허술해보이지만, 실은 오기도 있고, 경쟁심도 센데다, 욕심이 어마어마 하거든.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고, 심각하게 되고, 즐기기가 어려워지더라구.


오래전, 연기자 '유선'의 어느 인터뷰 기사에 본 글이었는데, 어떤 선배가 이런 충고를 해줬대.

"너무 잘하려고 하지마. 골프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 공이 멀리 못 나가. 힘빼고 공에 집중해야 멀리, 멋있게 날아가지. 잘해야겠다는 강박을 버리고 스스로를 놔버려. 설사 연기좀 못했다고 손가락질 받아도 곧 지나가고 잊혀지거든."

맞어. 무술에서도 힘주는 건 초보나 하는 일이야. 힘빼는 건 고수의 단계지.

온 몸에 힘 빼고, 이래야 한다는 기대도 빼고, 갖춰져야 한다는 조건도 빼버리면

참 가볍겠다,

훨씬 신나겠다!


자, 이번에도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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