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할 권리만큼이나, 열심히 쉴 권리도 필요하다
"회사에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해."
"사람들이 잠을 안자. 늦게까지 일하고, 끝나면 회식하거든.술먹고, 노래하고."
"학생들? 자율학습하고, 학원 갔다오면 자정이야."
"우린 유치원생도 학원 대여섯개 다녀."
한국의 실상 중 아주 일부만 알려주었는데도, 이미 외국친구들 눈의 휘둥그레진다. ㅎㅎ 짜식들. 놀라긴. 그 중 하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That's crazy. How can you guyz survive that way?"
(미쳤네. 니네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어?)
여기는 이집트 다합. 아침 11시인데 나를 비롯해, 다들 아침부터 할 일없이 카페에 나와앉아 있다. 이곳 해변카페 의자들은 아예 늘어지게 좋게끔 설계돼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먹거나 쉬거나 대화를 나눈다.
보고 있으면 다들 딱히 하는 일이 없다.
시간이 나면 해먹에 누워있기,
카페에 앉아 칵테일도 한잔 곁들이며 옆 사람과 시시껄렁한 얘기하기,
종일 해변가에 배 깔고 누워 빈둥빈둥 대기.
마치 ‘게으름’이 이곳의 공식활동으로 지정된 것같다.
해가 뜨면서부터 기온이 올라가는데, 한낮에는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가 무언가를 한다는 발상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카페에 늘어져 담소하거나 물에 들어가 노는 것 뿐이다. 아님 아예 떠나던가. ㅎㅎ 누군가 낮동안 아주 열심히 걷거나 뭔가를 한다면 사람들이 '쟤 왜 저러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볼 것이다. 내가 그랬다. 뭔가를 하려 애썼다. 그런데 섬을 구경한다고 자전거 끌고 나갔다가, 더위 먹고 기어들어온 이후아주 적극적으로 쉬고 있다. 바쁘게 뭘 할 수도 없지만, 딱히 바빠야 할 이유도 없더라고.
각 장소마다 돌아가는 고유의 속도들이 있다. 이곳은 대한민국과 아주 다른 속도로 흘러갔다. 밤까지 시간이 고요히 흘러간다. 한국이 100미터를 15초에 뛰는 속도라면 여긴 15분 뛰거나, 아님 아예 안 뛰는 같았다. 허, 이런 속도가 있다니, 신선하기까지 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한국만큼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곳을 못 봤다.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다들 행복은 커녕 불행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것. 무쓴 소리, 나는 행복한데? 라고 말한다면. 자, 함 봅시다.
2015년 유엔이 세계 143개국 사람들에게 "당신 얼마나 행복한가요?" 똑같이 질문했는데, 우리나라는 그 중 118위 했다. 뒤에서 세는 게 빠르다. 100점 만점에 평균이 71점인데, 우린 59점. 한참 기준미달이다. 자살률?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가중 자살률만 10년째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우리와 함께 상위권을 다투던 다른 나라들은 1995년 이후 줄어드는 추세인데, 우린 2000년 이후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이같은 자료가 말해주는 건, 스트레스와 불안, 불행이 만연한 대한민국에서 '행복하신 분들은 정말 예외'란 소리다.
한국인들이 왜 이렇게 불행할까,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그 중에 주요한 이유로 열악한 근무환경, 상대적 박탈감, 불평등, 그리고 쉬지 못하는 게 있었다. 다른 거야 거대한 사회 문제지만, 쉬는 건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거 같잖아? 라고 생각하신 분.
그런데 생각해보자. 넋놓고, 마음놓고 쉬어본게 얼마나 되는지. 한국처럼 굉장히 바쁘고 모든 게 빨리빨리 돌아가는 곳에서는, 쉬는게 참 어렵다. 뭐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불편해서 결국은 또 뭔가를 하게 된다. 뭐라도 해야 할 '압박'이 늘 있다. 몸은 쉬어도 머리 속에 해야할 들이 빛의 속도로 스쳐간다. 나도 그렇게 미친 듯이 뛰어다닌 1인 중 하나였다. 새벽에 어학원갔다, 출근해서 일하다, 점심땐 샌드위치로 때우고 글쓰다, 저녁엔 세미나 가고...'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끔은 멍해져도 괜찮다'고, 그런 말을 해도 범죄는 아닐텐데,
그런데 다합에 와서 처음으로 넋 놓고 쉬었다. 이곳에 있어보면 뭘 바쁘게 한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원. 모든 게 느릿느릿 잘만 굴러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구하나 뭐라 하기는 커녕, 다같이 늘어져 있으니 마음이 편했다. 넋 놓고 있다보니, 어느 덧 해가 졌다. 홍해 위로 달빛이 어린다.
옆에 늘어져 있는 현지인에게 물었다.
"근데 당신들은 왜 열심히 일하지 않나요?"
그러자, 그가 반문했다.
"그런 당신들은, 왜 쉬지 않습니까?"
한번 들어가면 나올수가 없어서 여행자들 사이에서 세계 3대 블랙홀 중 하나로 꼽히는 곳.
이집트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곳.
무엇보다 '게으름'이 공식지정된 곳.
우리처럼 공식적으로 불행한 나라야말로,
아무것도 하지않아도 괜찮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