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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Sep 04. 2017

삶은 무자비한 측면이 있지

고로 넘어지지 않는 법이 아니라, 넘어져도 일어날 법을 배워야 한다.

삶은 확실히 무자비한 측면이 있다.

굉장히 무례한 아주머니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교통사고로 얼마전 아들을 잃어서 그 슬픔과 고통으로 정신이 없었다거나,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친구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가족문제로 엄청 고민하고 있다거나, 젊은 나이에 자기분야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으며 성공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늘 자살을 생각한다거나.....  둘러보면, 조금만 자세히 보면 세상에 아프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런 삶의 슬픔이 확, 와 닿았다.

점점 쇠약해져가는 할머니, 방황하는 친구, 가족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 사람들의 아픔이 느껴졌다.

대체 왜 이렇게 삶은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운걸까? 삶이 참 야만적이란 생각이 들어 M에게 이에 관해 털어놓았다. M은 나의 스승이자 친구다. 나보다 조금 오래 살았을 뿐인데도, 나보다 많이 현명하다. M은 이렇게 답했다.  


"삶은 확실히 무자비한 측면이 있지.
그래서 삶의 야만성을 이해해야해."  


삶의 야만성, 그게 뭐죠?


M은 친절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인간이기에 가지는유한성과 한계를 낱낱이 경험해야할 필요가 있어. 아프고, 병들고, 죽고, 이별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그건 누구도 예외일수 없어. 내 의지와 우주의 의지가 맞아 떨어질 때는 최상이겠지만 늘 그렇지는 않겠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게 될 때  삶은, 아프단다. 그 안에는 수 많은 요소들이 포함돼 있어.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내친다면... 결국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을거야. 어떤 건 보고, 어떤 건 보길 피하려 한다면 결국 어떤 것도 제대로 볼 수 없겠지. 무언가를 보기 전 감정부터 올라올테니까."


흠.. 그렇군요.


"그러니

그대로 보거라.

그대로 느끼거라.

좌절, 고통, 슬픔, 이별, 완전함, 기쁨, 즐거움.... 그 안에는 삶이 주는 가르침이 있단다.

그런데 그 모든 걸 한꺼번에 준다는게 삶의 야만성이지.

퇴비를 받아서 그것에 깔려 주저앉아버리거나, 아니면 그를 활용해 다른 무언가를 키워내는 건 니 몫인거지. 삶은 그저 줄뿐, 관여하지 않는단다. 네가 받은 것들을, 네가 받은 삶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렸어. 그걸 이해하면 된다. 삶은 야만적이면서 동시에 자비적이다. 때론 누군가에겐 더 가혹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특혜를 받는다고도 할 수 있을거야. 그렇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본다면, 그 누구도 다르지 않단다. 이 우주에 살아가는 우리는 그 누구도 다르지 않단다. 그걸 이해하거라."


그의 말은 내게 뭔가 울림을 주었다.

사실 오늘 나는 그동안 하던 것들을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

아무리 해도 길이 보이지 않은 것 같고,

삶이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은 것 같아 좌절하던 참이었다.

이제 그만 멈춰설까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구나 힘들지 않나? 그리고 누구나 넘어질 때가 있지 않나?


M의 말처럼 삶이 내게 무엇을 줄 지는 내가 정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 무얼 할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관건은 넘어지지 않는 게 아니라, 넘어진 뒤 무얼 하느냐에 달린게 아닐까?  


완전히 에너지가 방전되어 엎어져 있다가, 다시 툭툭 무릎을 털고 일어섰다.   

"그래, 누구에게나 삶은 쉽지 않지.
그러니까 우린 넘어지지 않는 법이 아니라, 넘어져도 일어날 법을 배워야 해."


© 김글리 (이미지참조: www.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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