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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Sep 13. 2017

상실의 시대를 사는, 한 가지 기술

<엘리자베스 비숍의 연인>을 보고

<엘리자베스 비숍의 연인>이란 영화를 보았다.


엘리자베스 비숍? 그게  누구지? 했는데.... 

알고보니 영문학상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엘리자베스 비숍 (1911~1979)은 20세기를 통틀어 위대한 4대 여류시인으로 꼽히며, 퓰리처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의 시를 나는 영화를 통해 처음 접했다.

(*다른 3명의 여류시인은 에밀리 디킨스, 매리언 무어, 실비아 플라스가 있다. 정작 비숍은 자신을 여류시인으로 분류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비숍과 연인 로타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엘리자베스 비숍의 연인> 포스터


내가 좋아한 건 <남과 북>이란 시지만,

오늘은 그녀의 또 다른 시 <한 가지 기술One Art>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래서 여기에선 한가지 기술을 가지고 소개할까 한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것들이 언젠가는 상실될 의도로 채워진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은 아니다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so many things seem filled with the intent

to be lost that their loss is no disaster.


날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것, 문 열쇠를 잃은
당혹감, 무의미하게 허비한 시간들을 받아들일 것.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Lose something everyday. Accept the fluster 

of lost door keys, the hour badly sp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그리고 더 많이 잃고,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할 것
장소들, 이름들, 여행하려고 했던 곳들
그것들을 잃는다고 큰 불행이 오지는 않는다
Then practice losing farther, losing faster;

paces, and names, and where it was you meant

to travel. None of these will bring disaster.


나는 어머니의 시계를 잃어버렸고, 보라, 내가 사랑했던
세 집 중 마지막 집, 아니 마지막에서 두 번째 집도 사라졌다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I lost my mother's watch. And look! my last, or

next-to-last. of three loved houses w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두 도시도 잃었다, 멋진 도시들과 내가 소유했던 
더 넓은 영토들을, 두 개의 강과 하나의 대륙을
그것들이 그립긴 하지만, 그렇다고 재앙은 아니었다
I lost two cities, lovely ones. And, vaster,

some realms I owned, two rivers, a continent.

I miss them, but it wasn't a disaster.


설령 당신을 잃는다 해도(농담하던 목소리와
내가 사랑하는 몸짓을) 나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리라
상실의 기술은 분명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것이 당장은 불행이라고(그렇게 쓰라!) 여겨질지라도
Everyone losing you (the joking voice, a gesture

I love) I shan't have lied. It's evident

the art of losing's not too hard to master

though it may look like (Write it!) like disaster.


- 엘리자베스 비숍 <한 가지 기술> (류시화 옮김)


영화 <엘리자베스 비숍의 연인>은 비숍이 브라질에서 거주한 15년에 초점을 둔다. 비숍이 그곳에서 동성연인인 로타를 만나 함께 지냈다. 비숍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안정감과 행복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비숍의 시처럼 그녀의 삶은 상실로 가득했다. 


비숍은 어려서부터 자의와 상관없이 큰 상실을 경험한다. 생후 8개월 만에 건축가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다섯 살 때는 엄마가 정신병원으로 실려 간 후 다시 보지 못했다. 그녀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자라났지만 상실의 트라우마로 병약한 아이로 컸다. 이후에도 상실은 끝나지 않는다. 대학 때 사귄 남자는 청혼했다가 그녀에게 거절당한 뒤 자살하고, 그녀가 사랑했던 브라질 연인 로타는 우울증과 약물 중독으로 자살한다. 


상실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그녀가 천식, 우울증, 알콜중독 등에 시달린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비숍은 친구인 시인 로버트 로웰에게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묘비명을 써달라고 할 정도로 외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니까 이 시에는 비숍이 경험한 모든 상실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이 시가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실제 모습 (이미지출처: 네이버블로그- 나답게 살기 연구소)

나는 잃는 것에 많이 서툴다. 

비숍은 날마다 잃고 더 많이 더 빨리 잃어보라고 말하지만, 일단 상실의 경험이 많지 않다. 

게다가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당하고 고통스러운  행위가 아닌가! 

그런데 비숍을 통해 '상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삶 자체가 상실이란 걸 알 수 있다. 

왜냐, 누구나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야하잖아! 

류시화가 말한 것처럼  우리 인간은 "소유하고 경험하고 연결되기 위해 태어나지만 생을 마치는 날까지 하나씩, 그 전부를 잃어버리는 삶의 역설"을 살아간다. 상실은 삶의 일부고 결국 상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불행이라 생각할지라도 말이다. 뭔가를 잃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고,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더 큰 고통을 받는다. 상실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다행히 너무 아파하지 않고도 잘 잃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심리학에선 그를 '애도작업'이라고 부르는데, '잘 잃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깊이 슬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통곡할 수도 있고, 애도 일기를 써서 슬픔을 표현할 수도 있고, 포토앨범으로 그를 나타낼 수도 있다. 애도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으며, 대상과를 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기억을 하게 될 때 비로소 그를 떠나보낼 수가 있는데, 이는 인간이 성숙하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실은 내가 기록하는 것도 그런 작업의 일환이다. 기록을 하면 적극적으로 기억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쉽게 잊혀진다. 그래서 나는 잃기 위해 잊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록하는 편이다. 


어차피 익혀야 할 기술이라면 적극적으로 익히는 편이 낫다.

상실에 잘 대처하기 위해,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을 하나 더 늘렸다.  


글쎄, 오늘 난 뭘 잃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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