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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놈이 장땡이야

매일이 축제인 곳, "이봐,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할거야?"

by 김글리


지금까지 한 20여개국을 넘게 여행했어. 사람들이 자주 물어봐.

"여행하면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그럼 언제나, 주저없이 '쿠바'를 꼽아. 왜냐구? 이유야 정말 많지. 하지만 다 말할 순 없으니까, 몇개만 꼽아볼게.


하바나 말레꼰 비치와 시가 말레꼰은 스페인 어로 방파제야. 그냥 고유명사처럼 쓰고 있지. 우리나라 CF에도 나온 파도치는 장면 때문에 유명해졌어. 말레꼰 비치는 언제 봐도 멋진데, 해질녁에 보면 정말 멋져. 저녁이 되면 방파제에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과 한잔 하는 친구들과 하릴 없이 나 앉은 사람들(나처럼^^)로 북적북적대지. 저 멀리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럼콕(럼+콜라 섞은 칵테일) 한잔 들이키는거야.

이봐, 뭐 인생 별거 있어? 하고서. 캬~

말레꼰2 출처www.stars.hansung.co.kr.jpg 말레꼰에서 담소나누는 친구들 출처:www.stars.hansung.co.kr
말레꼰 출처www.stars.hansung.co.kr.jpg 해지는 말레꼰www.stars.hansung.co.kr

건강하고 발랄한 사람들 쿠바처럼 전국민적으로 몸좋은 나라를 못봤어 남미에서는 비만인 사람이 많았는데, 여긴 배가 나왔을 지언정 비만은 드물더라구. 흑인피가 섞여 근골이 탄탄하고 잘 발달된데다, 워낙 춤 좋아하고 시간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 노니, 건강할 수밖에. 조미료를 안쓰다보니, 먹거리도 어쩔수 없이 유기농이야.ㅎ

SAM_8075.JPG 광장에서 브라질 전통 무예 카포에라를 시전하며 놀고 있는 청년들

저럼한 물가 내 생각엔 잘하면, 인도도 제낄 수도 있을거 같아. 커피 50원, 토스트 100원, 직접 짠 망고주스 100원, 무슨 소꿉놀이 같은 물가지. '쿠바 물가 비싸더라' 하는 사람은 필시 관광객 대상으로 하는 곳만 간 거야. 그런 곳에 가면 밥한끼 만원 줘야하거든. 하지만 현지인 대상으로 하는 곳은 기절할 정도로 싸. 맛은.. 음... 패스할게.

SAM_8613.JPG 랍스터를 통째 구워먹는데 단돈 5천원! 맨날 먹었다~^^

음악천국 왠만한 레스토랑과 카페들은 전속 라이브밴드를 보유하고 있어. 들어가서, 1달러 맥주, 3달러 와인 한병 시켜놓고 질릴때까지 음악을 듣는거야. 샵 뿐만이 아니야. 공원, 골목 할 것 없이 어딜가도 음악이 끊이지 않고 흘러. 음악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여기가 헤븐이지.. 좀 만 있으면 핏속에 끈적한 살사가 흐르게 될걸.ㅎㅎ

2012-2013 세계여행 2820.jpg 공원에서 연주중인 '할아버지밴드' 인기가 꽤 많아 다수의 팬을 보유했다. 나도 그 중 하나.

하지만 무엇보다 쿠바가 좋았던 건, 바로 사람들

즐길 줄 아는 사람들 때문이었어.

몹시 가난한데도, 하루하루를 축제처럼 즐기더라구. 내 살면서, 그렇게 사랑스러운 또라이들은 처음 봤다니까. 그들의 에너지가 날 미치게 하더라구.


너무나도 뜨거워 가만 있을 수 없어

"햇살이 너무 뜨거워. 사람들도 너무 뜨겁고(hot blood), 공격적이야(aggressive)."

1년 넘게 쿠바에 서 음악을 배우고 있는 독일 청년도, 쿠바 사람들도 산티아고 사람들을 그렇게 말해. 그만큼 사람들이 워낙 다혈질이고 에너지가 넘쳐나. 괜히 산티아고에서 쿠바 혁명이 시작된게 아니지.

SAM_9409.JPG 공원에 나와 앉은 사람들


삶을 멀리서 바라보지 않고, 그대로 뛰어들어 온몸을 불사질를 것 같은 열기.

그게 있어. 산티아고는 쿠바 음악이 시작된 곳인만큼, 어느 도시보다 더 '음악'으로 흥청거려. 음악만 있으면 공원이든, 길거리든, 해변이든, 카페든 무대가 돼. 간신히 걸을 것 같은 할아버지도 음악만 있으면, 전사처럼 벌떡 일어나 한 시간 넘게 춤을 추시더라고. 놀라운 에너지야.

946703_389071204543508_377461621_n.jpg 서 있는거 아냐, 나 이래봬도 춤추는 거라구!
SAM_9457.JPG 길거리에서도 이런 밴드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한번은 새벽 3시가 넘도록 축제가 펼쳐지는데, 다들 밤새 정신없이 춤추기 바쁘더라구. 무대는 보지도 않아. 자기 놀기 바쁜거야. 내게 축제는 '보는' 것이었는데, 이들에겐 '즐기는' 것이더라구.

SAM_9435.JPG 낮부터 이어진 축제는 새벽이 다하도록 끝나지 않았다..



가난 해도 축제일 수가 있어

내가 갔던 5월엔 스콜이 자주 쏟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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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은 열대지방에 내리는 소나기인데, 매일 오후 4시쯤 굵은 장대비가 갑자기 쏟아지는거야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면, 사람들이 카페로 몰려들어. 나도 비를 피하려고 근처 카페로 들어갔어. 순식간에 사람들이 가득 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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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하나가 노래를 시작하자, 다른 사람이 기타를 치기 시작해.

그 옆에서 카혼(타악기 일종)을 두드렸고, 누군가는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어.

카페에 앉은 삼십 여명이 순식간에 음악으로 '하나'가 됐지.

다 같이 물결이 되어, 노래하고 춤추고 흔들어 대는데, 후~ 그 에너지가 날 미치게 하더군.

같이 흔들수 밖에 없었어. 흥을 넘어선, '신명'이 있었지. 


음악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 멀뚱히 서있지 말고 같이 놀자구, 아미고!

사실 쿠바는 몹시 가난해. 일반 노동자들의 월급이 10달러 내외, 의사나 교수 월급도 30~40달러 정도로 임금이 낮아. 오랫동안 경제봉쇄정책으로 물자도 아주 제한적이지 워낙 버릴 게 없다보니 길거리에 쓰레기도 거의 없을 정도야. 사는 게 녹록치 않은 건 두 달 여행한 나도 느낄 수 있었어. 그런데도 사람들 표정이 밝더라구. 사람들인 시간이 나면 밖으로 나와 어울렸지. 웃었고, 음악이 나오면 그에 맞춰 춤추고, 얘기를 하고, 축구를 하고,…


그들을 보면서, 모든 것이 너무도 풍부한데 행복하지 않은 ‘어느 곳’이 떠올랐어. 무표정한 얼굴들이 깔린 버스와 지하철, 인터넷망이 잘 깔려있어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데도 외로운 사람들, 맛있는 걸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고 옷도 사고 싶은대로 살 수가 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내가 지금까지 겪어온 자본주의는 ‘많이 가질수록’ 행복하다고 말했거든. 그런데 왜 우리보다 별로 가진 것도 없는 쿠바사람들이 삶을 더 많이 즐기는 걸까? 어째서 더 많이 웃는 걸까?


아, 이번엔 밴드의 연주가 시작됐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도, 그 음악을 들으며 춤추는 사람들도 순식간에 땀으로 흥건해졌어.


'아... 이런 개또라이들.

인생즐기는 개또라이들.'


왜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가 낚시 여행을 하러 쿠바에 왔다가 사랑에 빠졌는지,

왜 20년을 살게 되었는지,

왜 떠나고도 죽을 때까지 쿠바를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을거 같았어.

헤밍웨이.jpg 헤밍웨이는 많은 작품을 쿠바에서 썼다..

그때, 한 멋진 쿠바 청년이 내게 손 내밀었어.


"나랑 춤추자."

"나, 춤 잘 못추는데..."

"괜찮아. 잘하지 않아도 돼. 그저, 즐기기만 해.'


아, 이러니, 사랑에 안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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