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계획대로 하려 애쓰지마. 틈도 좀 있어야 여유가 생기잖아
터키에서 두달 반을 아주 편케 지내다 이집트로 날아간 첫 날.
이집트에 오니, 사람들마다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의 90%가 사기꾼이야, 좀만 방심하면 너한테 사기치려하니 무조건 조심해라.' 라며 야단이야. 하도 그러니까 정신이 확 들더라구. 사기당하지 말아야지 하고 들어갔는데, 아닌게 아니라 도착하자마자 사기당할 뻔했다니까. 휴.
전말은 이래.
카이로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가는 길이었어. 현지인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는데, 한 아저씨가 따라붙더니 이것저것 물으며 말을 붙이더라구.
"어디서 왔니, 여행하는거니, 어느 숙소로 가니. 예약은 했니?"
대수롭지 않은 말들이라 계속 대꾸해줬지. 숙소가 4층이었는데, 내 짐을 옮겨주면서 슬쩍 부탁해오더라구.
"조기 앞에 면세점 있거든. 거기에서 보드카 한병만 사줘. 돈은 줄테니까 걱정말고. 대신 숙소사람들한텐 얘기하지마. 무슬림이 술먹으면 좀 그렇잖아."
눈까지 찡긋하며 몇번이고 부탁하길래, 그러마 했지. 면세점에 보드카 한병이 5달러라는데, 별 일 아니라 생각했지. 그런데 굳이 남에게 말하지 말라는 부분이 좀 찜찜했어. 그래서 체크인할 때 숙소직원한테 '이런 저런 부탁을 받았는데 괜찮겠느냐고' 슬쩍 얘기했더니, 직원이 깜짝 놀라며 말했어.
"너 큰일나. 그거 걔네들 수법이야. 따라가면 돈이고 여권이고 뺏어서 도망가버려. 절대 가지마."
헐. 졸지에 이집트오자마자 여권 뺏길 뻔했네.
그런데 이건 시작이었어. 그 다음날 이집트의 대표유물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러 갔지.
그걸 볼 생각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설레었는지... 그런데 입구부터 장사진을 치고있는 삐끼들 때문에 감흥은 커녕 제대로 볼 시간이 없더라고. 사진 찍어줄테니 돈달라, 낙타 좀 제발 타라, 아니면 말이라도 타라. 파리 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아. 심지어 열살쯤 돼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스카프를 사달라며 1시간을 쫓아다니더니, 내 엉덩이를 만지고 가버리더군. 휴~ 달려드는 장사꾼들을 상대하느라 너무 지친 나머지, 피라미드고 스핑크스고 나발이고, 볼 기운이 없었어. 많은 여행자들이 정말 학을 떼고 오지.
게다가 물건하나 사는 것도 쉽지 않아. 가격이 적혀있지 않은데다, 대부분 아랍어로 되어 있어서 읽을 수가 없거든. 달라는대로 주어야 하는데 대개는 바가지를 씌우고, 버젓이 가격이 적혀있는데도 더 내라며 요구하는게 한두번이 아니었지. 거스름돈을 의도적으로 안주는 건 오히려 귀여운 축이었어. 나는여행하면서 현지인처럼 먹고 자고 살아보는 걸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는데, 현지인들은 내가 이미 돈많은 외국인이란 걸 깔고 대해. 사기를 치든, 얼르든 해서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려 애쓰지. 물건을 살때마다, 물한병 살때도, 밥한끼 먹을때도 스트레스가 받았어. 얘네가 이번엔 또 내게 어떤 사기를 치려나. 계속 긴장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이슬람 국가라서 그런지, 외국 여성들은 '쉽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지, 성희롱이 정말 엄청 나더라고. 거리를 걸으면 사람들이 말 걸어. '이봐, 섹시걸. 나좀봐봐. 나너 알어!! 헤이!! 잠깐 기다려. 우리 어디서 본거 같지 않아???' 이정도는 양반이고, 심하면 ‘오~나 죽어버릴거 같애, 나랑 같이 사랑을 나누자.’ 말만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 만지려 하고 너무 가깝게 들이대며 말해서 순간순간 깜짝깜짝 놀라. 저녁에 강도가 더 세져서 노골적으로 같이 자고 싶다며 성희롱을 하지. 굉장히 무례하더라고.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니라,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어.
이래저래 날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집트에서는 내내 우울했어. 게다가 모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밖에 소음이 어찌나 심한지, 불면증이란 걸 모르고 한평생을 살아온 나인데 이집트 와서 한번도 단잠을 자본 적이 없었어.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집트는 정말내가 가본 최악의 나라다, 이건 지옥이다, 라고 불평불만을 늘어놨어. 그렇게 너무나 싫었던 이집트인데… 3주가 지나고 막상 떠날 시간이 되자, 만감이 교차했어. 뭔가 아쉽더라구.
공항 가는 길이었어. 버스를 타고 가는데 길가 현수막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더라구. 바람 저항을 막으려고 해놓았나봐. 하긴 구멍이 좀 있어야 바람도 통하고, 현수막이 찢기거나 하지 않겠지.
돌아보니까. 이집트에서 너무 인색하게 지냈던 것 같아. 실은 좋은 사람들도 많았거든.
숙소 스텝 무함마드는 내가 항상 불편한 없는지 묻고, 차도 사주고, 유용한 정보도 많이 줬는데...
사막 투어 가이드인 알리 아저씨와는 친구처럼 어울렸었지. 같이 차마시고 밥먹으면서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내 고민도 털어놓고, 참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다합에선 또 어땠고. 기념품 가게 주인은 내 동갑이었는데 작별인사를 하러 갔더니, 눈물까지 글썽이며 아쉬워했었지. 옷도 선물해주고. 그 외에도 길 잃을 때마다, 어려운 있을 때 도와준 사람들도 많았는데...
틈보이지 않으려고, 더 긴장한거 같아. 그게 좀 아쉬워. 좀 더 편해질 수도 있었는데..
빵값으로 사기 친다고 해도 그게 100원 200원이야. 돈 뜯어낸다 해도 천원, 이천원이라고.
너무 틈없이 살려고 하다보니, 스트레스가 많았네.
그러고보면 헐거워보이는 좀 모자라보이는 구멍도 필요한 존재네.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