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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이야기를 가졌는가

남다른 한끗을 만드는 이야기의 힘

by 김글리


남다른 이야기를 가졌는가


모로코에는 수천년 된 수크(전통시장)가 많다. 수크의 가장 유명한 품목은 역시 카펫이다.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를 쓴 '코너 우드먼'에 의하면 수크에서 파는 카펫은 크게 두 종류라고 한다. 하나는 기하학적 무늬가 두드러지는 카펫으로 모로코 인들에게는 인기가 좋지만 관광객들에게 팔리는 일은거의 없다. 다른 하나는 베르베르 원주민이 손수 만든카펫으로, 이를 만든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관광객들이 원하는 카펫도 이런 종류다. 상인들은 이런 카펫에 웃돈을 얹어 판다. 상인들은 관광객들을 모아놓고 카펫 하나하나마다 그를 생산한 지역의 기원을 맛깔나게 설명하고, 각 카펫에 숨겨진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쉰 개의 카펫이 있다면, 쉰 개의 이야기가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관광객들은 카펫이 아니라 카펫에 담긴 이야기를 사갔다.


오, 올림푸스?

터키의 작은 시골마을인 올림포스Olympos.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이 작고 외진 작은 마을에 전세계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숙소가 즐비하다. 아름다운 바다와 푸른 산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고품격 휴양지로, 진짜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들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다. 5개월 간의 여행으로 심신이 지쳐있던 내게는, 그야말로 선물 같은 곳이었다.

올림포스Olympos

여기서 나는 굉장히 게으르게 하루를 보냈다. 산책 다니는 거 외엔 돌아다니지도 않고, 숙소 마당에 설치된 해먹에 누워 늘어지게 쉬고있다. 아침먹고 해먹, 점심 먹고 해먹, 저녁먹고 해먹... 너무 누워있어서 허리가 아프면 잠시 일어나 걸었다. 그런데 그 산책길이 장관이었다.


과거 로마제국이 있던 곳이라, 길 근처에 로마제국 당시의 theater (영화관) 며 hamam (목욕탕), tomb (무덤)이 즐비했다. 나는 모험가가 된 기분으로 로마시대 성벽이며 잔해들 사이를 거닐었다.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이럴까?

게다가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은밀하게 쏟아져 내렸다. 해 뜨고 질때면 더 장관이었다. 올림포스를 두고 진짜 여행을 즐길줄 아는 사람만이 들리는 곳이라고 하는게, 이해가 갔다.

올림포스 풍광

하지만 올림포스를 유명하게 만든 건, 뭐니뭐니 해도 '키메라 chimera' 다. 키메라는 땅에서 자연발화로 솟아나는 불길을 말하는데, 수 천년 동안 꺼지지 않고 타오르면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알려져있다.


키메라의 전설

도착하던 날, 숙소 주인에게 '키메라' 불꽃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전해들었다. 대뜸, 그러나 은밀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너, 여기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는거 알아?"

나도 같이 은밀해졌다.

"아니, 몰라. 그런게 있어?"

"응, 키메라 불꽃이라고 있어. 못 들어 봤구나. 수천년 동안 전해지는 신화가 있는데, 함 들어볼래?"

그러면서 신화 한토막을 들려주었다.

과거 올림포스에 키메라Chimera라는 괴물이 있었어. 그 괴물이 사람들을 못살게 굴자, 보다못한 시지프스 손자인 벨레로폰이 키메라를 처치해버렸지. 그리고 땅속 아주 깊은 동굴에 가둬버렸어. 지하에 갇힌 키메라는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지. 그 화가 불꽃이 되어서 수 천년동안 뿜어져 나오고 있는거야. 이 불꽃이 지금까지 타오르고 있어. 바로 올림포스 타탈리 산 중턱에 있는 '키메라'지.

"이거 보려고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이 몰려와. 이거 놓치면 후회할거야."

주인은 이야기를 마치더니, 슬며시 내 손에 키메라 투어 전단지를 쥐어주었다.

'그럼 그렇지. 결국 장사 속셈이구만.....' 하고 지나치기엔 내 호기심이 이미 같이 불타오른 뒤였다.

정말 웬만한 투어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데, 너무 궁금해졌다.

'땅 속에서 괴물이 불을 내뿜다고? 그 불꽃은, 어떻게 생겼을까???'


키메라를 잘 보려면 밤에 가야하는데다, 개별로는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투어를 이용한다. 결국 그날 밤, '키메라 투어'에 합류했다. 투어팀은 밤 9시가 넘는 야심한 시각에 출발했다. 키메라가 있다는 . '타탈리'산 입구까지 투어버스를 타고 가서 꽤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20~30분쯤 올랐으려나? 가이드가 우릴 돌아보며, 소리쳤다. "저기 보세요, 키메라가 있네요!!"


오~~~~그런데...

가스버너만한 불ㄲ

가이드가 가리킨 곳에 여남은 불꽃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그 크기가 내 손바닥 만했다.

"애개...." 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나도 황당했다. 뭐야, 저게 괴물이 내뿜는다는 그 불꽃이라고? 큰 건 아궁이 불 만하고, 작은 건 가스불 정도 크기밖에 안되는데? 사람들이 "불꽃이 너무 작다", "볼품이 없다"고 불평하자, 가이드가 실토했다.


"사실 이 불꽃은 키메라가 아니라 뿜어내는 게 아닙니다. 땅속에 매장된 천연가스가 바위 틈으로 새어나오며 만들어낸 거죠. 너무 오랫동안 타오르다보니, 불꽃이 많이 줄긴 했죠."

그래, 수천년동안 뿜어댔으니, 줄어들만도 하지. 이해할게, 키메라야.


그럼 그렇지.

실망하긴 했지만, 이런 풍광은 처음아니냐며 서로 위안하면서 열심히 사진 찍고, 가까이 얼굴 들이대어도 보고, 손으로 만져도 보았다. 그래도, 뭔가 석연찮았다. 왠지 속았다는 느낌에, '아니 이게 왜 그렇게 유명한거야? 이 불꽃이 뭐 대단하다고 온대?' 궁시렁 대며 내려왔다. 그 와중에도 올라오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불꽃을 보려고 관광객이 사시사철 끊임없이 몰려든다는데, 대체 뭐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까, 궁금해졌다.


남다른 이야기가 있는가

내려오는 길에 한 터키가족을 만났다. 서너살된 남자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였다. 아줌마가 내게 물었다.

"키메라, 어땠어요? 볼만한 가치가 있던가요?"

"글쎄요, 불꽃이 좀 작긴했는데 뭐 볼만했어요ㅏ."

"나도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 남편은 완전 실망했죠. ㅎㅎ"

나는 아줌마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불꽃에 왜 이렇게 유명한 건가요?"

아줌마가 답했다.

"그 불꽃은 신의 노여움을 사서 땅속에 갇힌 키메라의 화라고 하잖아요.그러니까 불꽃보단 키메라의 존재, 그걸 확인하러 오는게 아닐까요? 정말인지, 아닌지.ㅎㅎ"


들으며 무뤂을 쳤다. 그래, 그래 바로 그거다.

이야기.

사람들이 손바닥만한 불꽃을 보고싶어하는건, 거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수천년동안꺼지지않는 불꽃과 그에 얽힌 신화!!!


솔직히 이런불꽃이 어디 여기뿐이겠는가. 게다가 사람들은 그 불꽃이 천연가스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매력적이지 않나. 만리장성도 지나치고, 그 유명한 라스베가스 쇼도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친 내가 '이건 꼭 봐야겠다' 라고 혹 할 만큼. 결국 불꽃이 가진 이야기가 남과 다른 한끗을 만들어내었고, 그 한 끗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남다른 한끗을 만드는 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야기에 끌린다.


지포라이터는 베트남 참전 용사가 총을 맞고도 품속의 지포라이터로 살아났다는 이야기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일본 아오모리 현에서는 태풍으로 사과 90%가 떨어지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남은 10%에 '시련을 이겨낸 사과'라는 이야기를 담아 프리미엄을 붙어 팔아서 성공했다. 공정무역 커피인 '아름다운 커피'는 히말라야 작은 마을인 말레에서 수입한 커피에 현지농부들의 이야기를 담아, 소비자들에게 커피와 그들의 삶을 함께 판다.


똑같은 것도 다르게 만드는 매혹적인 이야기들.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결국엔 남 다른 이야기를 가지느냐, 마느냐. 그게 관건이다.결국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길을 나서지않았던가.

그댄, 남다른 이야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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