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계는 내가 정하지 말입니다
2001년 2월,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여행을 할 때였다. 당시 나는 19살이었고,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뭔가 해보고 싶었다. 지금껏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그런 일을.
우연히 서점에서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 (도도로키 히로시 저)라는 책을 보고 그 길을 걸어가보기로 했다. 영남대로는 서울 남대문에서 시작해 부산 동래까지 이르는 총 950리의 길이다.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장사꾼들이 짐 지고, 군대가 오가던 그런 길이었다.
나는 심한 길치다. 지도는 봐야 정신만 아득해질 뿐이고, 동서남북을 헤아리기는 커녕 오른쪽 왼쪽도 종종 헷갈린다. 그런 내가 도보여행을 한다고 하니.... 상상이 가시겠지. 출발하고부터 정말 늘 길을 잃었다. 그래서 항상, 언제나, 올웨이즈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야 했다. 덕분에 사람 붙잡고 묻는 건 기똥차게 한다. 전혀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다.

사람들에게 길을 자주 물으면서 재밌는 걸 하나 발견했다.
"말씀 좀 여쭐게요. 00까지 걸어가려는데, 어떻게 가나요?"
라고 물으면, 어떤 사람은 그냥 가르쳐주지만 대부분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고, 일단 말리기부터 했다.
"뭐, 거기까지 걸어간다고? 아유~ 거끼지 걸어서 절때 못가!"
"뭣하러 고생시럽게 걸어간디야. 걍 차 타고 가. 아님 택시 타."
대개는 그런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아, 그렇게 먼가? 정말 걸어서 못가나?' 하고 겁먹었다. 사람들 말대로 차 타야 하나 살짝 고민도 했다. 그런데 막상, 걸어가보니. 또 그렇게 멀지 않더라고. 아무리 멀어도 한 두시간 걸으면 도착했고, 멀어봐야 반나절을 넘는 경우는 없었다. 그냥 묵묵히 한 발 한발 내 딛는데 집중하다 보니,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곤 했다. 그렇게 나는 서울에서 용인을 갔고, 문경을 갔다.
나는 한 소년을 떠올렸다.
제스 마틴. 그는 14살이 되던 어느 날, 혼자서 요트로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당장 요트도 없었고, 항해 경험도 전무했다. 심지어 항해 할 돈도, 후원자도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그에게 불가능한 꿈이라고 말렸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세웠다. 사람들의 말을 듣는 대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요트를 배우고, 불가능한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을 시작했다. 다큐를 찍고, 후원자를 모으고, 3년동안 준비한 끝에 1998년 17살의 나이에 호주 멜번 항에서 단독 항해를 나섰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고, 말그대로 집채만한 파도를 만나고, 온갖 풍파를 겪은 뒤, 11개월만에 무사히 멜번 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단독으로, 어느 항구에도 멈추지 않고, 원조 받지 않은 채 세계일주를 성공한 사람들 중 그가 최연소였다. 그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는 기항하면서 썼던 자신의 일기를 모아 <라이언 하트>라는 책을 내었다. '라이언 하트'는 '용맹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온갖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 거친 바다에서 홀로항해하는 무모한 모험을 시도했나요?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꿈을 이루기위해서죠."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삶이얼마나 무의미하겠느냐'는 이 용맹한 소년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불가능한 꿈을 꾼다고 말리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갈했다.
그랬다. 나 역시, 길을 물을 때마다 나를 말리던 여러 사람들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내 한계를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 고.
도중에 발톱이 빠지면서 걷는게 어려워졌고, 나는 걷는 대신 자전거를 택해 계속 길을 갔다. 그리고 출발한지 열흘째 되는 날, 결국 부산 동래에 도착했다.
반복되는 사람들의 만류를 경험하면서, 하나 크게 깨달은 게 있다.
사람들의 말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 알고보니 멀다고 말렸던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그 길을 '걸어서' 가본 적이 없더라고. ㅎㅎ 그리고 대개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잽싸게 말리기부터 한다는 걸 알게됐다. 내가 외국을 나갈때도, 세계여행을 한다고 할 때도, 말렸던 사람들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