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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Sep 26. 2019

새로운 종족이 뜬다

이제는 '잡노마드' 시대

2018년 태국에 여행갔다가 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나보고 무슨 일을 하냐고 묻길래, “나는 교육 컨설턴트로도 일하고, 강연도 하고, 글도 써. 강점코치로도 일하고 있지.” 라고 답했더니 그 친구 왈,


“너 슬래시족이구나! 멋지다!”


“슬래시족? 그게 뭔데?”


“응,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이야.”


그때 처음 알았다. 슬래시족이라는 말이 있다는 걸.  ㅎㅎ 어렸을때부터 나는 평생동안 가질 직업이 매우 여러 개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에게 꽤나 타박 받았다. '뭘 하든 한 우물을 파서 전문가가 되어야지, 뭣도 모르는 소리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왠걸, 전세계적으로 한꺼번에 여러 개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단다. '디지털 노마드'부터 '슬래시족'까지 잡노마드의 시대가 왔다.



멀티족(Multi), 슬래시족(Slasher)을 아시나요?


2007년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마르시 앨보허는 많은 뉴요커가 다양한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슬래시 (/)를 통해 자신을 표현했다.     


"저는 신경외과 의사/ 기자/ 댄서로 일합니다."

"저는 필라테스 강사/ 디자이너/ 작가 입니다."      


 앨보허는 이런 현상을 '슬래시 효과 The Slash Effect'라고 이름붙였다. 슬래시 (/)는 둘 이상의 단어를 나열할 때 쓰는 문장부호인데,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여러 일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다.  앨보허는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의 업무나 직업이 아니라 다양한 신분으로 자신을 정의할 거라고 보았다.


이처럼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켜 슬래시족 Slasher 또는 멀티족Multi이라 말한다. 이들은 하나의 직업을 고집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여러 직업을 넘나들며 일을 하는 '잡 노마드 Job Nomad' 들이다.


"예전 세대가 자신을 '삼성맨'이나 '현대맨'으로 생각했다면 밀레니엄 세대는 자신을 '스마트폰을 만드는 사람'이라거나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직장보다는 직업이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멀티커리어이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시에 여러 직업을 가지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밀레니엄 세대의 정체성은 하나의 일자리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느냐가 자신을 설명한다. " - <내리막길 세상 노마드 안내서> 106~ 107쪽 (제현주 지음)


평생 직장도 사라지고, 한 가지 일에만 종사하기엔 수명이 길어진 지금 같은 시대에는  멀티족, 슬래시족과 같은 잡노마드가 확산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실제로 오늘날 미국의 30대 젊은이들은 평균 9번 직장을 옮겨본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직업으로 생각한다.


정치경제학자인 제임스 로버트슨은 자유방목형태의 일이 점점 커지는 트렌드이고, '미래의 일과 레저의 열쇠'가 될 것이며 노예에서 농노로, 농노에서 고용으로 변환한 그 다음 단계가 될 거라고 예측했다. 디지털 노마드는 2017년 추산 330만명인데, 2020년에는 1000만명이 될 거라는 전망이다. (근데 이걸 어떻게 셌을까)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아보기, 여긴 노마드 천국일세!


치앙마이. 방콕에서 720킬로미터 떨어진 이 도시의 매력은 끝도 없다. 태국에서 방콕 다음으로 크고, 문화가 발달한 도시로 이름나 있는데 무엇보다 디지털 노마자들이 꼽는 1위 도시다. 싼 물가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더해져 매년 100만명 이상의 여행자들이 찾고 있다. 


나 역시 그 행렬에 빠질 수 없어 2017년, 노마드의 천국이라는 치앙마이에서 한 달 간 머문 적이 있었다. 시내의 깨끗하고 조용한 아파트를 구해서 지냈는데, 시설은 호텔급이었는데도 한달 렌트비가 39만원 정도로 저렴했다. 물가 저렴하지, 인터넷망 잘 깔려있지, 치안 좋지, 하다보니 나같은 디지털 노마드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왔다. 실제로 카페에 가면 컴퓨터를 켜놓고 작업하는 다양한 국적 (으로 추정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카페를 자신의 사무실처럼 활용하며 일하고 여행하며 지냈다. 



노마드의 역습, 이제는 노마드의 시대     


과거의 유목민이 물과 식량에 따라 옮겨다니는 생계형노마드였다면, 현대의 유목민은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자발적노마드다.

과거의 노마드가 생계를 위해 변화를 추구했다면 (좌) 현재의 노마드는 자발적으로 변화를 추구한다. (이미지출처: www.pixabay.com)

노마드의 본질은 경계를 넘나드는 데 있다.  이런 '노마드적 기질'은  정착이 중요했던 농경시대에는 공동체를 방해하는 악습정도로 여겨졌다. 그래서  ‘방랑벽, 떠돌이 기질, 역마살’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로 묘사되었고, 이런 기질을 가진 자들은 '사회 부적응자'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노마드적 기질은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급변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이 관건이 되면서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융합하고 새롭게 적응하는 노마드적 기질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노마드의 개념도  단순한 이동에서 아래의 개념으로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노마디즘 Nomadism

-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일체의 방식 (들뢰즈)

- 특정한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삶을 탐구하고 창조해온 인류 보편적 가치 이자 디지털시대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전략 (자크 아탈리)

새로운 살믜 방식이자 전략 (이미지출처: www.freenomadlife.com)

노마드들은 한 우물을 파라는 기존과는 매우 다른 전략을 살아간다. 이들은 가능한 한 ‘여기저기 여러 개의 우물을 파는’전략을 구사하며, 흥미와 관심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며 다양한 소득을 얻는다. 이들은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융합하고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노마드가 핫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마드'는 하나의 거대 흐름이 되어가고 있고 다양한 형태로 퍼져가고 있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업무를 보는 디지털 노마드에서 시작해, 그린 노마드 (장소에 상관없이 자신이 사는 곳에 자연을 끌여들여 사는 사람들), 노블레스 노마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경험, 문화 등에 과감하게 돈을 쓰는 사람들), 잡노마드 (직업에 따라 도시며 국가를 이동하며 사는 사람들) 등 갈수록 다양하게 파생되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자크 아탈리'는 노마디즘이 인류 역사를 만들어왔고 미래 사회를 개척해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야흐로 노마드의 시대다.



우리는 타고난 노마드 Born to Nomad


사실 우리는 모두 노마드의 후예들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더 나은 곳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수 만년에 걸쳐 지구 곳곳을 이주하며 살았던 노마드들이다. 600만년에 이르는 인류사에서 정착했던 시기는 0.1%에 불과하다. 현생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인류를  '이주(移住) 하는 동물'이라고도 한다.  사막, 열대우림, 산악지방, 극지방과 같은 극한적인 환경에도 적응하며 살아남았고. 이런 적응력으로 생존터전을 늘리며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인간이 되었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 끊임없이 이주했던 호모 사피엔서의 후예들 (이미지출처: www.pixabay.com)

우리는 타고난 노마드들이다. 어쩌면 노마드는 우리 뼛속 깊이 박힌 본능이자, 그동안 농경시대에 억압해왔던 또 하나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노마드거나 노마드적 기질이 있다면, 축하한다! 지금까지의 농경기반 사회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어울리지 않았겠지만, 앞으로는 더욱 신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좇아 끊임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자들, 바야흐로 노마드의 시대가 왔다. 이제는 그간 억눌러왔던 기질을 대놓고 활용할 때가 되었다. 시대가 당신을 원하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좇아 끊임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자들, 노마드의 시대가 왔다 (이미지 출처: www.pixabay.com)

* 참고

<멀티족으로 산다> 수잔 쾅 지음

<노마드 라이프> 조창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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