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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Oct 02. 2019

용기도 근육처럼 길러진다

모험의 원체험 만들기

새로운 길을 가는 용기


사람들은 용기를 타고나는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용기야말로 근육처럼 길러지는 거라고 굳게 믿는다. 내가 그렇게 용기를 길렀기 때문이다. 스스로 용기있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너 참 용기있다!" 다. 


아마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세계여행을 하고,  무전여행을 한 나의 행적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겁이 많다. 특히 뭔가 새롭게 시작할 때는 죽을만큼 겁이 난다. 그런데도 두려움을 이기고 한 걸음 뗄 수 있는 건, 내겐 '모험에 관한 원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체험(原體驗)'은 심리학에서 쓰는 용어로, 기억에 오래 남아 있어 어떤 식으로든 구애를 받게 되는 어린 시절의 체험을 말한다. 원체험은 인간의 뇌리와 마음속에 흉터처럼 남아, 다른 체험에도 영향을 미치며 성격은 물론 장래까지 한 인간의 인생을 좌우한다. 내겐 16살에 홀로 올랐던 월악산이 바로 모험의 원체험이다. 




별 이유 없이 뭔가 도전해보기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주 촌스런 표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한 청년이 지구본을 들고 그를 삼킬 듯 입을 쫙 벌리고 있는 사진이 표지였는데, 그야말로 촌티가 팍팍 날렸다. 그 책을 택한 건 단 하나.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제목은 <난 지구를 꽉 삼켜버렸다> (임형준 지음), 생각보다 재밌어서 여러번 읽었는데, 그 가운데 내게 오랫동안 울림을 준 구절이 있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결코 좌초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 곳도 갈 수 없다. 배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오로지 떠나는 배만이 뭔가를 얻을 수 있다. 격랑과 폭풍우를 만날지라도 '보물섬'에 갈 수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설사 침몰한다 해도 그 도전하다 맞는 '침몰'은 항구에 묶여있는 배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 책을 읽은 탓이었는지,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당시 고 1 겨울방학 때였는데, 혼자서 겨울산을 가보고 싶어졌다. 그때까지 혼자서 산을 가거나 여행해 본 적이 없었다. 겁은 났지만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어디 갈만한 산이 있을까, 알아 보다가 월악산이 눈에 들어왔다. 월악산은 제천, 충주, 단양, 문경에 걸쳐져 있는데, 험준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고, 집에서 1시간 거리였다. 도전하기에 적당해보였다. 그곳을 가보기로 했다. 


일단 월악산에 혼자 가겠다는 계획을 가족에게 알렸다. 부모님은 굳이 가야할 이유가 있냐며 마뜩찮아 하셨고, 오빠는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는 산은 험해서 힘들 거라고 겁을 주었다. 그 말들을 듣고 보니, 굳이 가야하나? 싶어졌다. 하긴, 가야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고싶다는 그 마음 밖에는. 그무렵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영화 <클리프행어>를 TV에서 방영해주었는데, 시작 장면부터 여주인공이 절벽에서 뚝, 떨어져 죽는다. 그걸 보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무사히 살아돌아올 수 있을까? 혼자서 산에 가본 적도 없잖아! 1093m의 월악산이, 8848m의 히말라야처럼 다가왔다. 


사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다. 안간다 해서 누구 하나 뭐라할 사람도 없다. 가야할 이유도 실은 딱히 없다. 그저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뿐. 그래서 월악산 가는 전날까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TV 드라마를 보는데 이런 대사가 흘러 나왔다. 


"포기하는구나, 그래 포기해라. 포기하면 그 뿐이니까." 


그 말이 내게 하는 말 처럼 확, 꽂혀 들어왔다. 배우가 그 대사를 말하면서 약간 비아냥거리는 것도 같았다. 오기가 솟았다.  


그래. 까짓, 한번 해보자. 



월악산을 오르다 


다음날 새벽 6시. 나는 월악산 가는 기차에 앉아 있었다. 마음이 아주 심란했다.  

'아, 오긴 왔는데,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산이 험하다고 하던데, 어디 절벽이 있는 건 아냐?

길 잃고 조난당하는 건 아닐까?  눈더미에 파묻혀 아무도 발견 못해서 얼어죽으면 어쩌지?'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이제 겨우 16살인데,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비장해졌다. 전쟁터에 나가는 것처럼 엄청 긴장되고 떨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죽잖아. 이왕 죽을 운명이면 집에 가만히 있어도 죽을 거고, 살 운명이면 전쟁터에서도 살겠지. 그렇다면 죽을 때 죽더라도, 하고싶은 걸 하고 죽는 게 낫겠군!' 


그렇게 마음을 다잡자, 다시 용기가 솟았다. 마침내, 퐈이널리 '월악산'에 도착했다.  저 멀리 보이는 정상- 영봉을 보면서, '오늘 살아서 돌아올지,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며 비장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험하기로 소문난 한겨울의 월악산은 과연 어땠을까? 상상에 맡기고 싶지만 살짝만 이야기해주겠다.  

겨울 월악산 풍경 (이미지출처: 국립공원관리공단)

월악산은 가파르긴 했지만 생각보다 험하지 않았다. 대신 매우 당황스러웠다. 길이 너무나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겨울산을 가면서도 길이 미끄러우리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겨울산에 눈이 있을 거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눈이 발목까지 쌓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단단하게 다져져 얼음이 되었다. 얼음까지 박힌 비탈길은 너무 미끄러워 제대로 걷기가 어려웠다. 뒤뚱거리며 오르는데, 그제야 사람들이 어떤 행색을 하고 있는지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전문 등산복에, 등산화를 신고 아이젠으로 완전무장하고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나? 

집에서 입던 점퍼에 아이젠은 커녕, 밑창이 닳아 반들반들한 운동화를 신고 온 터였다. 참나, 뭘 하겠다 마음먹으면, 착실히 준비도 하기 전에 몸부터 먼저 나가버리다보니, 몸이 고생한다.  남들은 전투한다고 대포와 권총으로 무장해왔는데 나는 나무 막대기에 솥뚜껑 하나 가지고 나온 격이었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걸어가는 내 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해주었다. 


"에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정상까지 가려고 그래요?"

그러게요,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모험의 원체험을 만들다


아직 정상을 가려면 3분의 1은 더 가야했는데 어느덧 늦은 오후 4시였다. 겨울엔 해가 빨리 져서 정상을 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더구나 기차 막차시간도 정해져 있어서 지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정상을 포기하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멀게만 보이는 월악산 영봉을 뒤로 하고  밑창 닳아빠진 운동화를 신고 거의 구르듯 내려오는데, 예상외로 기분이 무척 좋았다. 


가족들이 겨울산은 무서운 곳이라고 겁을 줬는데도 불구하고 내 뜻을 포기하지 않은 것.

영화에서 주인공이 산에서 떨어져 죽는 걸 두 번이나 봤는데도 용기를 낸 것.

무엇보다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것! 


그게 엄청난 승리감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랬다. 애초 정상을 밟는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두려움에 지지 않고 해냈다는 것, 그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때 죽을 결심을 하고 홀로 올랐던 월악산은 '내 안의 두려움을 넘은 경험'으로 깊이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용기를 길러주는 만트라

 

사람들은 '용기'는 타고나는 거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용기도 근육처럼 키울 수 있다. 운동을 생각해보자. 타고난 장사가 아니라면, 처음부터 바벨 100kg를 들 순 없다. 일단 작은 것부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자꾸 하다보면 근육이 단련되고, 힘이 길러진다. 그러면 어느 순간, 이전에는 들 수 없다고 생각했던 무게를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도전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월악산을 혼자 오르는 건 아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당시 16살때는그 일이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 만큼이나 큰 일이었고, 우주정복만큼 터무니없고 대단한 모험이었다. 별 것 아니었지만 목숨 걸고 해봤던 그 경험은, 그 뒤에 내가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만약 월악산을 도전해본 그 기억이 없었다면,  무전여행이고 세계여행이고 뭐고 할 용기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들을 혼자 했어요?" 라고 물었던 그 모든 도전은 이 월악산의 한 걸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처음의 선을 넘어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그리고 조금씩 그 스케일을 키워가면서 모험근육도 힘이 붙는다.


월악산에 다녀온 날, 나는 만트라(Mantra, 진언, 주문) 를 하나 얻었다. 특히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두려움으로 압도될 때,  효과 만빵이다.   


'어차피 한번은 죽는다기왕지사 죽을 거면하고 싶은 걸 하고 죽자.'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실망할 것이다.
돛줄을 풀어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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