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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Nov 13. 2019

불안, 살아있음의 또 다른 이름

20대에 나는 이유 없이도 자주 우울했다.

대체 내가 여기에 왜 있는 건지, 뭘 하고 있는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수시로 힘이 빠졌다. 열정적이 됐다가 곧바로 좌절하고… 아무리 날고 걷고 뛰어도, 여전히 컴컴한 터널 안이었다.



Thanks God, It’s Friday!


모두가 랄라라 하는 금요일 아침, 나는 눈물이 났다.

이 소중한 하루가 아무 의미 없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젠장, 이 빌어먹을 신들아, 입이 있다면 답해봐.

내가 대체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내가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나는 그렇게 절규하듯 노트북에 뱉어버리고 꽝, 덮어버렸다.


그런데 노트북을 덮은 순간부터, 하루가 내 의도와는 다르게 제 멋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거실 한 켠에 감자가 박스 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시골에서 부모님이 구본형 사부님을 드리라고 보낸 것이다. 그런데 일주일째 못 드리고 묵혀둔 참이었다. 우울해서 어디고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감자에 싹이 나기 시작해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사부님께 전화를 드리고 약속을 잡았다. 감자를 갈무리해서 상자에 잘 담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자가 말 걸어왔다.


“이봐 이봐, 너 요즘 우울하대매?”

“(흥. 감자주제에... ) 그래. 요즘 우울해 미치겠다. 어쩔래? 젠장. 삶에 의미가 없어.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난 아무런 존재가치도 없어. 제기랄 꿈이 다 뭔 소용이야. 사람이 다 뭔 소용이야. 나 따위 그냥 없어져 버리면 그만인데.”


“감자 주제에 한마디만 할게. 난 삶의 의미 따윈 몰라. 하지만 날 봐. 난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적당한 수분, 공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싹을 틔워내. 어디서든 최선을 다해 나를 꽃피우는 거,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거든. 내가 왜 고구마로 태어나지 않고 감자로 태어났을까... 이런 생각 따윈 할 겨를이 없다고.” 


할 말이 없었다. 감자 주제에 어디서나 싹을 틔우려고 애쓰는 게 대단해 보이긴 했다. 감자가 갑자기 신이라도 된 걸까? 나는 말없이 그 감자들을 상자에 고이 담아 사부님댁에 가져갔다. 사부님은 추리닝을 입고 온 우울한 봉화처녀에게 잘 익은 사과와 배, 호두를 내어주셨다. 햇살이 잘 드는 부엌에서 오전 내내 나는 사부님과 함께 호두를 까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우울에 대해 사부님의 답은 간단했다. 


“젊은 땐 그런 법이지.”


나는 또 할 말이 없어졌다. 사부님의 말은 이어졌다.

“삶의 의미를 묻는 것도 좋지만, 너무 거기에 매이면 지치게 돼. 그저 살아있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좋지 않느냐. 저 앞에 나무들을 보아라.”


한쪽 벽이 온통 유리로 된 사부님댁 부엌으로 북한산이 통째 보였다. 하늘은 파랬고, 햇살은 막 피어나고 있었다. 사부님은 등산 갈 것을 청하셨다. 우리는 북한산으로 이어진 사부님댁 뒷길을 걸었다. 사부님과 나는 말이 그리 많지 않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길을 걸으며 사부님은 부러 내게 막 피어난 벚나무 꽃망울이며, 제비꽃을 보여주셨다. 마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느냐’듯. 황금 같은 오전 동안 내가 꺼내 보인 건 ‘겨울 같은 우울’이었는데 사부는 내게 ‘깃털 같은 봄’을 보여주었다. 마음이 그 봄처럼 가벼워졌다. 신이 사부님을 대신 보낸 걸까?


따르릉.


따스한 오전을 보내고 집으로 오는데, 오랜만에 기찬오빠 전화가 왔다. 뭐지? 갑자기 내게 점심을 함께 하자고 했다. 마침 시간이 비어서 재동오빠와 함께 셋이서 인사동에서 점심을 먹었다. 기찬오빠는 나의 이 빌어먹을 저지르는 습성을 유난히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 나를 바꾸려 들지 않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 내가 블로그에 올린 ‘이 빌어먹을 신들아’ 글을 보고서 연락을 해왔단다. 내게 신이 필요할 거 같은데 신은 바쁘니 자기가 대신 왔다고. 그는 밥 먹는 내내, 눈을 부라리며, 온갖 제스처를 사용하며 신의 말을 대신 전해주었다.


“너의 ‘귀자다움’을 그대로 살리면 돼. 그럼 끝이야.”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띠링.


이번엔 문자다. 어랏, 병곤오빠네.


“어제 본 얼굴이 안 좋던데, 무슨 일이 있니?”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는다고 우울해 하던 차, 사부님에게도 인정받은 이 성실한 독종은 내 걱정을 친히 해주었다. 아, 나도 사랑 받고 있구나. 그의 관심이 새삼 고마워졌고,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나 따위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신은 내게 병곤 오빠의 문자를 보내줬다.


그리고 사무실. 오늘은 희망제작소에 공식 출근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얼마 전 다른 곳에 ‘취업’을 한 관계로 다음주부터는 다른 곳에서 일한다. 그 동안 함께 했던 연구원들이 내게 저녁을 함께 먹자고 청했다. 귀자씨, 그 동안 수고했어요. 마지막인데 같이 저녁 먹어요. 정말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던 생태탕을 떠먹으며 한 연구원이 말했다.


“그 동안 많은 인턴이 왔다 갔지만, 귀자씬 정말 인상 깊은 인턴 중 하나였어요. 처음에 딱 와서 ‘나는 돈 버는 건 당분간 생각 없다. 나를 더 많이 알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엄청 충격이었어요. 난 그걸 이제야 생각하는 중인데... 그 동안 많이 배웠어요.”


내가 그런 말도 했던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전혀 의도치 않은 영향이었다. 나는 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서 우울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살아야 할 가치가 적어도 백 만배 있어졌다. 맥주까지 한잔 걸치고, 기분 좋게 밤 11시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깊은 우울, 신은 이렇게 답했다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드는 생각은,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하루는 기적이다’ 란 것.

아침부터 밤까지 이 빌어먹을 신은, 

“네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지 않느냐

네가 너인 것만으로도 정말 좋지 않느냐.”며,

감자를 통해 사람들을 통해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덕분에 아침의 개떡같은 기분은 오늘 하루가 지나면서 천국에 있는 기분으로 바뀌었다.

그래, 내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 살아있다는 기분을 선물하는 것도 좋지 않는가. 


다음날은 토요일.

나는 아직 모두가 자고 있는 어둑어둑한 새벽 5시에

부스럭 부스럭 일어나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새벽의 거리를 보았다. 

새벽빛이 일렁이며 거리마다 한줄기씩 스며들고 있었다. 

그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며 내게 말을 건넸다. 

I’m Alive! (내가 살아있어!)


“20대는 누구나 불안하다. 
화려하고자 하는 욕망과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믿고 싶지만
마주한 현실은 숨막히는 평범함이다. 
스스로를 위로하려 하지 말고 
남에게서 받은 위로를 믿지 마라...” 
-유수연, ≪23살의 선택, 맨땅에 헤딩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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