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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Nov 13. 2019

완벽한 '나'를 찾습니다

폭식, 우울? 그건 덤이죠

언제나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게 완벽하다는 건 ‘큰 사람’이 되는 것이었고, 큰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 다정다감하고, 능력 있고, 신중하고, 성격 좋고, 당당하고, 사람들 말 잘 들어주고, 쾌활하고, 긍정적이고, 멋진, 그래서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 만약 내가 생각하는 큰 사람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모습- 예를 들어 쪼잔하거나 소심하거나 성급하거나 바보같은 모습이 보이면 화가 났다.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내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게 짜증났다. 그런데 스스로를 통제하면 할수록, 완벽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폭식횟수는 늘어만 갔다.


그렇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습관이 있다. 배가 고프지 않고 식욕이 없어도 마구 먹을 수 있다. 가끔 거의 정신줄을 놓고 음식 속에 파묻히는데, 위가 거의 찢어지는 느낌이 날 때까지 먹는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폭식’이라고 불렀다. 폭. 식. 대개 이 증상은 홀로 있을 때 나타나며 특히 특정 심리적인 자극을 받을 때 폭발하는 경향이 있다. 어떠한 논리나 이성으로도 억제하기 힘든데, 음식을 몸 속으로 집어넣는 행위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중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매번 걸려 넘어지는 자리가 있다. 다음에는 안 그래야지, 하면서 또 다시 걸려 넘어지는 자리. 내겐 스트레스성 폭식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스트레스성 폭식


스트레스 받으면 폭식하는 습관은, 고등학교 때 시작됐다. 당시 기숙사에 살았는데 한 방에 12명씩 복작대는 공간에서, 새벽 6시부터 밤 11시 반까지 짜인 시간표대로 지내야 했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전부 공부하는 시간이었고, 집은 2주에 한번씩 갈 수 있는 살벌한 곳이었다.


친구관계, 성적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엄청났고, 외출도 어렵고 혼자 있을 공간조차 없는 곳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내게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방법이 필요했고, 곧 가장 손쉬운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먹는 것. 먹는 동안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먹는 동안은 내가 가진 모든 문제와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었다.


어릴 때 나는 무척 날렵했고, 뛰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운동신경이 좋아 친구들과 놀면 인기가 있었고 참 날씬했는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음식으로 도피하다 보니, 내가 얻은 거라곤,

군살 10키로 + 역류성 식도염 + 스스로를 더욱 한심하게 여기는 것 = 나는 이런 내가 점점 싫어졌다.


2006년, 나는 큰 결심을 했다. 살도 빼고 싶었지만, 그보다 그 고리를 끊고 싶었다. 단식을 하는 것이다! 그 동안 먹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왔으니, 그럼 먹지 말아보자, 란 단순한 생각이었다. 단식에 대한 기본 개념도 없었고, 단식을 잘못하면 몸만 망가지기 십상이라 하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 지리산 산자락에 있는 단식원으로 내려 갔다.




지리산 단식원 이야기 


지리산 단식원은 엄청난 산골짜기에 숨어 있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작은 시골에 도착했고, 거기서도 차로 30분을 더 들어가야 했다. 따로 버스가 없어 목사님이 직접 마중을 나오셨다. 참, 이곳은 60대 목사님 내외가 운영한다. 


이곳에 있으려면, 아침 저녁마다 찬송가를 부르고 예배도 보아야 한다. 나는 종교는 없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같이 했다. 사실 아침마다 모여, 노래 부르는 게 재밌어서 한번도 안 빠지고 열심히 했다. 거기엔 나 말고도 5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다. 암에 걸린 사람도 있었고 다이어트 하러 온 사람도 있었고, 뭔가 삶의 변화가 필요해 온 사람도 있었다. 저녁마다 목사님은 우리를 대상으로 건강하게 먹는 법, 채식요리법 등에 관해 한 시간씩 건강강의를 해주었다.


“자가 면역증이란 게 있어요. ‘죽고 싶다, 속상하다’ 등 부정적인 말이나 생각을 하면, 실제로 몸 속 유전자가 그렇게 인식해버린다고 해요. 그럼, 그게 병이 되고 암 씨앗이 되는 겁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를 돌아봤다. 늘상 ‘난 안돼, 난 왜 이 모양일까?’ 라고 즐겨 자책했는데, 이런 부정적인 마음이 내 몸에 좋은 영향을 줄리 없었을 터. 내가 내 몸을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너무 방치했구나, 후회가 생겼다. 


내가 하는 단식은 ‘포도단식’이라, 매일 포도를 먹는다. 한번에 10알씩 하루 5번에 걸쳐 먹는다. 나는 하루 한 송이도 안 되는 포도만 먹으며 한 달을 보냈다. 정확히 31일. 솔직히 밥을 먹지 않고도 그토록 오랜 기간을 지낼 수 있는 게 놀라웠고, 그러고도 별탈 없다는 건 더 놀라웠다. 한 달 만에 11키로가 빠졌다. 


밥을 먹지 않으니 하루가 차~~암 길었다. 첩첩 산중이라 인터넷은 물론 휴대폰도 쓸 수가 없었다. TV도 없어 달리 할 게 없었다. 책 읽다가, 몇 시간에 걸쳐 일기 쓰다가, 심심해지면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밤도 주우러 다니고, 산책도 했다. 특히 부산에서 온 정선생님, 대전에서 온 한의대생 언니, 서울서 온 작가 언니랑 죽이 잘 맞아 얘기를 많이 했다. 서로 성격이나 배경은 무척 다른데도, 지내다 보니 정말 비슷한 점 하나가 있었다.


‘완벽’에 대한 강박이 있다는 점. 다들 자기애가 강했고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자책도 강했다. 가끔 넘어질 수도 있고, 하다 보면 잘 안될 때도 있는데 다들 그런 걸 못 견뎠다. 나는 그들에게서 나를 보았다.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보통보다 더 높은 수행 수준을 부과하는 경향이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부족한 결과나 실패, 실수를 잘 참지 못한다. 그래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결과를 냈을 때, ‘극단적인 자기비판, 만성 스트레스, 우울증과 불안, 강박 장애, 심장병’과 같은 다양한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주의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번아웃(Burnout 극심한 피로, 과로, 소진) 을 경험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높은 기대치를 부과하고, 또 사람들의 수많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똥줄 타게 노력한다. 그러다 지쳐버리면 모든 끈을 놓아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만성 우울감을 느끼는 것도, 실패해도 성공해도 기쁘지 않은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대체 이런 완벽주의는 무엇 때문에 비롯되는 걸까? 《기대의 심리학》 (선안남 지음) 책에서는 이런 설명을 해준다.


“학자들은 신경증적 완벽주의는 본질적으로 강렬한 실패 회피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어떻게 하든지 실패와 실수를 피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일이 성공적으로 마쳐도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의 성장과정을 잘 살펴보면 그들에게 높은 기준을 부과하고 자신들의 기대를 만족시켰을 때에만 사랑과 인정을 주었던 부모나 중요한 타인이 있을 것이다.”




그냥, 아무나 되세요


예전에 예능프로그램 <한끼 줍쇼>에 가수 이효리가 나와 재밌는 말을 했다. 진행자들이 길을 가다 한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만난 상황이었다. 아이를 보자, 개그맨 이경규는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 판에 박힌 말을 했는데, 그를 보던 이효리가 이렇게 말한다.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훌륭한 사람이 되지 말고 아무나 되라니. 놀라운 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한번 태어난 인생 멋지게 살아야 한다. 큰 일을 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말 덕분인지 몰라도 나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왠지 큰 일은 큰 사람만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큰 사람이 되어야만 사랑받을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에 ‘큰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라는 기준을 만들어두고 거기에 나를 끼워 맞추려 무던히 애썼다. 하지만 큰 사람이 되고싶었던 나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의 나는 아주 ‘작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실수 많은 허당에 짜증도 잘 부리고 화도 많은 데다 고집도 세고 찌질한 구석도 많은, 큰 사람과는 거리가 먼, 완벽하게 작은 인간이었다. 


그런 나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작은 나를 없애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그 시간은 정확히 내 폭식의 역사와도 맞물린다.

완벽에 물든 나의 환상과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폭식과 다이어트의 긴 역사를 반복해오며, 

상처로 얼룩진 내 안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루는 꼬마언니가 말했다. (꼬마언니는 넷째 언니의 애칭이다.)

“니가 내 동생이 아니었더라도 후배로서 좋아하고 아꼈을 거야.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해. 널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너를 좋아하게 될 거야.” 


순간 멍해졌다. 난 그토록 나를 보잘것없이 여겨왔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그렇게 좋게 말해 준다는 게 어색하고도 어색했다. 하지만 왠지 힘이 났다. 


그래, 굳이 어떤 모습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멋진 사람은, 결국 내가 되는 게 아닐까? 어떤 기준도 필요 없이, 어떤 판단도 필요 없이. 매 순간 마다 완성시켜가는 나 말이다. 오늘 이만큼 살아냈으면 그만큼의 내가 되는 거고. 누구도 될 필요 없이. 완벽해질 필요는 더더욱 없는 그냥 나. 

그날, 나를 위해 이야기를 하나 지어 들려주었다. 


옛날 옛날, 큰 사람이 되고 싶었던 한 아이가 있었다. 큰 사람이 되어야만 특별해지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는 큰 사람이 되어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작은 아이였기 때문에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큰 사람이 되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많은 걸 이뤘지만 여전히 큰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만족할 수 없었다. 큰 사람이 될 때까지는 기뻐하는 것도 사치였다. 이상하게도, 큰 사람이 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면 쓸수록 자기 안의  ‘작은 사람’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았다. 마침내 어른이 된 아이는 포기하기로 한다. 더이상 싸울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자기 안의 작은 사람을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간 숨기려고 갖은 애를 써온 ‘작은 사람’을 대놓고 드러내기로 작정했다.


가장 먼저 ‘우주먼지만큼 작은 사람의 지극히 사소한 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한 편 썼다. 작은 사람이 하는 아주 하찮은 일에 대한 글이었다. 사람들은 제목과 시에 담긴 내용을 아주 좋아했다. 그의 대담한 표현과 과감한 자기표현에 열광했다. 사람들은 그의 시와 글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사람으로서 마침내 성공하기 시작했다.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완벽하게 작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주먼지만큼 작았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결국 그 먼지에서 우주가 탄생하거든요.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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