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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Jun 07. 2020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요새 책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게 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내 책 한권 내고 싶어하는 분'이 많은데, 나는 이런 분위기가 매우 반갑고 적극 지지하는 쪽이다. 특히 내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건 더욱 그렇다.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보는 것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넘쳐나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사랑하기도 어렵다. 

나는 지금까지 4권의 책을 내었고, 운 좋게도 거의 모든 종류의 출판과정을 경험했다. 

여러 방식으로 글을 쓰고 책을 내어보면서 나는 자기 이야기를 직접 써보는 것, 여기에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는 걸 경험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네 이야기를 빨리 글로 써보라"고 부추기곤 한다. 


내게 '글'은 운명이라기보다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는데 더이상 뭘 해야할지 모를 때 꺼낼 수 있는 최후의 수단과 같다. 더 이상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 그때마다  글이 나를 구원해주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나를 끌어올려주는 '동아줄'이 되었고,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생각할 때 다른 세상을 보게 해준 '토끼홀'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왜 그렇게 글을 쓰고 싶어했는지, 그를 통해 무엇을 얻게 되었는지를 나누고자 한다. 특히 자신의 경험을 글을 써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인생의 첫 책쓰기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다. 내 안에 있는 것들 - 펄떡거리며 숨쉬고 있는 것들을 표현하지 않고는 무얼 해도 채워지지 않을 그런 갈망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두는 <욕망리스트>가 있었는데, 매년 빠지지 않고 나온 게 '책쓰기'였다. 기억은 안나는데, 친구들에게 "난 나중에 책을 쓸거야."라는 말을 자주 하고 다녔다고도 했다. 돌아보니 내가 했던 일 역시 글 쓰는 것과 크고 작게 모두 연관이 되어 있었다. 


정말 책을 써야겠다, 본격적으로 생각한 건 2006년  ‘구본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때부터였다. 연구원의 졸업논문으로 한 권의 책을 써내야 한다. 주제는 자기가 가장 쓰고싶은 것을 고르는데, 책은 자신을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했다. 나는 ‘나’를 쓰고 싶었다. 자신의 역사를 기술한다는 거. 어쩌면 이거야말로 자신을 가장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책으로 쓸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내 책은 미뤄두고 대신 공저로 2권의 책을 내었다. 모두 구본형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함께 집필한 것이다.   


첫 번째 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강점을 발견했는지를 과정과 방법을 그려간 강점책이었다. 총 7명의 연구원들이 참가했는데, 서로 의견이 달라 조율해가며 책을 썼다. 우리는 각자 생업에 종사하며 1년 가까이 줄기차게 모여 공동 토론하며 집필했고,  결과물은 1년 뒤 <나는 무엇을 잘할수 있는가>로 나왔다.   


두 번째 책은, 2009년 마지못해 회사를 다니기보다 보다 능동적으로 직장생활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시작한 작업이었다. 총 9명의 연구원이 참가했다. 나는 도중에 허리디스크가 파열돼 끝까지 책작업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저자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결과물은 1년 뒤, <회사가 나를 미치게 할 때 알아야 할 31가지>로 나왔다. 


왼쪽이 첫번째 책, 오른쪽이 두번째 책

책을 여럿이서 같이 쓰면 상대적으로 쉬울 거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글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달라 의견을 조율하고 형식을 조율해가면서 써가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좋은 점은 쓴 원고를 다른 공저자와 공유하고 서로 피드백해주며 진행하는 것. 덕분에 글쓰는 데 오는 괴로움 외로움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두 책 모두 1년씩 걸린 작업이었고, 쓰는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성취감은 컸다. 공저로 글을 쓰고 나자, 이젠 정말 내 얘기를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말 나의 이야기를 써보자  


2012년,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할 때였다. 20대때 나는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는 목표아래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며 살았다.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없을 만큼 다 했는데, 예상외로 그 끝이 허무했다.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에서 과장, 대라 직급을 달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고작 '경험'을 쌓고 있었다는 자각에 심한 현타가 왔다. 인생을 낭비했다는 후회, 실패자라는 좌절에 힘들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때 우연히 들은 팟 캐스트에 이런 말이 나왔다. 

"어차피 완벽한 선택은 없어. 그 선택을 완벽하게 만드는 노력이 있을 뿐.

내가 한 선택이 후회된다면 그걸 최고로 만들 경험을 딱 하나만 해봐."


그때 알았다. 나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지만 그 경험을 제대로 활용해본적이 없다는 걸.   

내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게 뭘까 밤새 고민했고, 다음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죽기 전 가장 후회할 게 뭘까 생각해보니, 내가 그동안 한 경험을 글로 남겨두지 않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한편씩  쓰기로 마음먹고,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구독자는 한 두명에 불과했지만, 매일 같이 글을 쓰는 동안 구독자가 늘어났고 나중에는 2천명까지 늘었다. 카카오톡, 다음, 브런치 메인에 소개가 되고, 방문자가 하루 3~4만명이 되고, 조회수가 10만까지 올라간 글도 생겼다. 신기했다. 누군가가 나의 경험에, 나의 이야기에 공감을 해준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사람들이 글이 좋다고 말해주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달 간 써둔 55편의 글을 가지고 기획서를 쓰고 출판사에 컨택해서 출간계약을 했죠. 책을 쓰기 시작해서 출판까지 딱 4개월이 걸렸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들 


그동안 쓸데없는 경험만 쌓았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는데, 그 쓸데없는 경험을 글로 쓰면서 완전히 새롭게 보게 되었다. 쓰잘데기 없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좋은 일들이 많았다. 나를 도와준 사람도 많았고, 행복했던 순간도 많았고, 의미 있었던 일들이 차고 넘쳤다. 그런 보석같은 순간들을 다이아몬드를 채굴하듯이 하나 둘 발견해서 써내려가는 과정은 정말 황홀할만큼 좋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책을 읽을 때도 행복하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글을 쓴다는 건 정말 행복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내가 나를 알아주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나중에 출판을 했을 때도, 글을 쓸때만큼 행복하진 않았다. 그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나는 자존감을 회복했다. 


알고 보니, 내가 쌓았던 경험은 쓰레기가 아니라 정말 귀한 시간들이었고, 나 역시 루저가 아니라내 기준에선 최고라는게 판명났기 때문이다. ㅎㅎ 누가 판명하냐고? 물론 내가 한다. ㅎㅎ


4 번째 책을 쓰면서도 나는 같은 기분을, 이전보다 훨씬 더 통합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3번째 책이 나의 20대를 돌아보는 작업이었다면, 4번째 책은 나의 인생을 통째 돌아보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내 길에 대해 확신을 얻게 되었고, 이 책 자체가 이정표가 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얻은 게 가장 컸다. 나는 이미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강하게 알게 됐다. 이 책을 쓰면서 나를 정말로 좋아하게 되었다. 


왼쪽이 세계여행기를 담은 세번째 책, 오른쪽이 20년의 방황기를 담은 네번째 책


1982년 노벨문학상을 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인생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


자기 경험을 자기가 직접 써봐야 한다. 그러면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내 이야기를 직접 쓰면서 나는 내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고, 어떤 상담사나 명상 프로그램도 주지 못한 큰 힐링을 맛보게 되었으며, 내 인생의 주도권을 되 찾게 되었다. 지금도 나의 이야기는 진행중이고, 글을 쓰면서 나의 인생을 촘촘히 엮어가고 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글로 써보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힐링인지, 엄청난 의미를 주는지를 몇 차례 경험하고 나서 나는 이를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어졌다. 특히 더이상 갈곳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더이상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삶의 의미거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래서 공허하고 우울하고 분노와 슬픔으로 하루하루흘 보낸다면 더욱 더. 


책 한 권을 쓰는 건, 기존에 없던 세계를 하나 만드는 것과 같다. 집을 짓는 것처럼, 우리는 글도 짓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없던 세상을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별들은 카오스를 타고 태어나듯,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작업에도 그만한 혼돈과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작가를 ‘꿈’으로만 간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 게다.


나로서는 언감생심 꿈꿀 수 없는 일이야.

나는 작가가 되기엔 너무 부족해요.

그건 좀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게 아닐까요. 


맞는 말이다. 책을 쓴다는 건 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엔 그 선후가 바뀌었다. 좀 특별한 사람들이 책을 쓰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책을 쓰면 좀 특별해진다. 그게 진실이다. 

 

나는 누구나 작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자기 살의 작가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로만 사람들에게 권하고 부추기는 대신, 그를 도와줄 가이드북을 직접 써보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리고 책으로 만드는 것까지 해볼 수 있도록 말이다.

단 4달만에.

 

이게 내 다음 책이 될 예정이다  :)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좋은 글쓰기엔 다음의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누가 뭐래도 제멋대로 떠들겠다는 뻔뻔함과 
바닥까지 감정을 드러내겠다는 솔직함이다. 
-작가 김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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