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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Jun 28. 2020

서렌더, 내가 아닌 것 포기하기

진정한 서렌더의 의미

예전에 나는 서렌더 Surrender가 순종/ 순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명상을 공부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surrender'다. 서렌더는 맞서 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상당히 거슬렸다. 그건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게 아닌가? 나는 운명은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 부류로,  순종하고 순응 하는 따위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로, 서렌더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는 걸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게 되면서, 서렌더가 새롭게 와 닿기 시작했다.


최근 명리학을 공부하고 내 팔자를 조금 읽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더욱 그랬다. 그토록 발싸심하며 살아왔던 삶이, 그토록 통제하려고 노력했던 지난 시간이 결국은 '내 팔자대로 흘러왔구나' 를 직접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운명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결국 나는 내 운명의 틀 안에서 내 생긴대로 놀고 있었다.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에 있는 손오공의 신세라고 할까.


모든 걸 통제하려는 그 생각이 오히려 더 많은 불안을 낳았고, 오히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냥 결과는 '내맡기고', 어떤 처지에 있든 '그냥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나는 그러지 못했다.  모든 걸-결과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조차도 통제하고 싶었으니까.


서렌더는 특정 '사람'이나 '제도'에 순종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서렌더는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다.


대체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명리학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자연의 흐름처럼 본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성공과 실패도 하나의 흐름이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가는 하나의 흐름. 여기서 애쓰지 않겠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하되, 결과를 내 뜻대로 만들려고 애쓰지 않겠다는 의미다. 있는 그대로 결과를 받아들이고 거기서 다시 시작한다. 그런 측면에서 서렌더는 오히려 '진인사대천명'과 비슷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맡기는 것이다.


오늘 나는 그토록 거부해온 내 운명에 서렌더 하기로 했다. 내가 이해한 서렌더의 의미는 이렇다.  


자신의 운명에 서렌더 하는 건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보다 '내가 가진 것'에 눈을 돌리겠다는 뜻이다.     

그건 지금 내가   있는 것에 집중하고  결과가 무엇이든 의연히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이다.



니체의 "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

이게 진정한 서렌더이자, 나다움의 시작점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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