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싶은 걸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며칠 전 지인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의 꿈을 좇기로 결심했다. 그의 꿈은 조종사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하늘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다,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고, 마음껏 하늘을 날 수 있는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꿈을 좇기로 마음먹기까진 그로부터 십 수년이 더 걸렸다. 사실 그동안 그에겐 꿈을 이루지 않아도 될 많은 이유가 있었다. 직장은 좋았고, 벌이도 좋았고, 생활은 안정되었다. 하고싶은 공부도 있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흘렀다. .. 하지만 갈등이 계속 됐다. 생활은 안정될지 몰라도, 현재의 삶에 그가 그리는 미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결심했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제 그는 2주 뒤면 미국 비행학교로 떠난다. 조종사가 되기 위해, 불가능을 안고서 안정된 현재를 버렸다.......
<조르바 세금법>이란 게 있다.아마 누구도 들어보지 못했을 게다. 왜냐면 내가 만들어낸 세법이니까. ㅎㅎ이 세금법은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여러 이유로 그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일단 이 세법의 유래부터 살펴보자. 내가 만들었지만,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준 사람은 따로 있다. 나는 그를 '정선생님'이라 불렀다.
2006년, 한 달간 포도 단식을 하러 지리산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정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당시 '나를 바꿔보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포도단식을 했는데, 혼자 2주간 하다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지리산에 있는 한 단식원을 찾았다. 그곳은 60대 목사 내외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름도 간판도 없고,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알음 알음 찾아오는 곳이었다. 종교와 상관없이 불치병환자부터 정신수양, 다이어트등 다양한 목적으로 단식하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왔다. 내가 오고 며칠 뒤, 그 정선생님이 왔다.
첫 인상이 아주 독특했다.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부산에서 왔다는데, 처음엔 말도 잘 하지 않았다. 50대 아주머니로, 예전에 초등학교 선생을 했다고 해서 다들 정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본색이 드러났다. 알고보니 개그맨처럼 재치가 있고, 아주 화통한 분이었다. 평소엔 말이 없다가도, 한번 입을 열면 걸~쭉한 부산사투리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얼마나 재밌게 이야기하는지, 모두 웃느라 쓰러졌다. 입심이 대단했다! 가끔 우스개로 "나는 나를 희생자로 모는 대신, 나를 표현할 자유를 택했지." 라고 말했는데, 말그대로 자기 주장도 확실했다. 언제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조금의 꿀림도 없었다.
내가 봐운 대부분의 주부들은 본인보단 자식이나 남편을 위해 살았다. 그런데 정선생님은 ‘자신’을 위해 살았다. 정기적으로 여행을 다니고, 좋아하는 그림을 보러 다녔고, 음악을 좋아해 아주 좋은 스피커를 사서 감상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데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예술, 인문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고, 가치관이 아주 뚜렷했다. 나는 정선생님을 보며 조르바 영감을 떠올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책 <그리스인 조르바>에 보면 조르바라는 60대 노인이 나온다. 매우 활달하고, 자유분방하며, 거침없는 노인네다. 두번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은대로 산다. 단순하면서 명확한 자기만의 가치관으로 거침없이 살아가는 '자유인', 그 자체다. 만약 한국에 조르바가 있다면, 단연코 정선생님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같이 있는사람들끼리 인터넷 쓰러 읍내에 가기로 했다. 단식원은 깊은 산 속에 있어서 인터넷은 커녕 전화도 안 터진다. 그래서 가끔 읍내로 나가는데, 버스도 안다니는 길을 따라 2시간씩 걸어가야 했다. 걸어가며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내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냥 하고싶은대로 살고 싶은데, 사람들이 가만히 두질 않아요. 잔소리 하고 간섭하고... 후... 너무 신경쓰여요. 짜증도 나고요. "
그러자 정선생님이 이렇게 답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라믄, 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얼마간의 비난이나 불평은 감수해야 됩니다. 나도 가끔은 가기 싫은 모임도 가고, 사람들 군소리도 듣고, 그래요. 내가 내야 하는 일종의 세금인거죠.”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그 좋은 것이 공짜로 그냥 오겠냐는 거다. 그러니 사람들의 잔소리, 충고, 질투, 미움... 그 모든 것들을 싫다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자기도 그렇게 산다고. 내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그러지 못한 세상에 조금의 댓가는 지불해야지 않겠는가? 그의 지론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오~ 정말 새로운 관점 아닌가. 잔소리, 주변의 간섭을 방해물이 아니라 내가 지불해야할 일종의 세금라고 생각하라니. 예전에 영국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는 부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시기심을 자극해서 사회적 공해를 일으키므로 '부자들에게 더 높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공해를 유발하는 기업인에게 벌금을 물리듯, 부자들에게 시기심유발죄로 벌금을 물리자는 논리였다. 정선생님도 이와 비슷한 논리였다. 살고싶은대로 살면,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극할 수 있으니, 그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심봉사가 눈 뜬 심정으로, 이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법을 내 멋대로 ‘조르바 세금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살고 싶은 데로 사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이게 이 조르바 세법의 핵심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데에도 대가는 따른다. 요지는 내가 뭘 하든 어떻게 살든, 대가는 '반드시' 따른다는 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조종사를 꿈꿨던 내 지인은 현재 36살이다. 그 나이면 조종사를 시작하는 거의 막차에 올라탄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조종사로 지원할 수 있는 나이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다. 꿈을 좇아가기엔, 장밋빛 가능성보다 가시밭길 같은 험난한 여정이 될 수도 있다. 지인은 어제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항공쪽에서 일하는 친구가 그러더라. '이제부턴 산너머 산이 아니라, 산맥을 보게 될거야' 라고. ㅎㅎㅎ 솔직히 아직 겁나고 두려워. 나보다 훨씬 어리고, 조건 좋은 사람들과 경쟁 해야 하거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걔네만큼의 체력을키우면되고, 능력을 키우면 된다고…. 안된다고 해도 충분히 해보고, 그 상황에서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나가면 되니까. 다른사람 눈을 의식하지않고, 내가 만들어나갈 자신이 있어. 하지만 안될 것도 고려하고있어. 그래도 일단은 내 길을 가는데에만 올인하고 싶어. 안 그러면 죽을때까지 후회할 거 같아."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제임스본드 주연의 영화 '007- ‘you only live twice’ (1967)의 대사가 떠올랐다.
“you only live twice or so. 여기 두 개의 삶이 있습니다.
it seems one life for yourself. 하나는 당신 현실의 삶이고
and one for your dreams. 또 하나는 당신이 꿈꾸는 삶입니다.
This dream is for you. 이 꿈도 당신의 것입니다.
So pay the price. 다만 대가를 치르세요.
Make one dream come true. 꿈을 이루세요.
you only live twice. 누구에게나 2개의 삶이 있으니까요."
우주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뒤집으면, 내가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무엇이든 내것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대가를 치르기만 한다면, 우주는 그에 합당한 결과를 돌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보기에 우주는, 최고의 투자전문가다. 대가를 치른 자에게만... 보상을 주니까. 나는 그의 꿈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지든, 그는 결국 뭔가를 이뤄낼 것이라 믿는다. 왜냐, 그는 자신의 꿈에 대가를 치르기로 이미 결심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