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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May 14. 2021

달리기를 말할 때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새로운 사랑에 빠지다

요새 새로운 취미가 생겼습니다.

달리기입니다. 1주일에 5번은 뜁니다. 처음엔 20분에서 시작했는데, 두 달이 넘어서자 40분까지 뛸 수 있게 됐습니다. 집 근처에 경복궁과 청와대가 있어서 그 근방으로 달립니다. 달리다보면 생각들이 점점 사라지고 무념무상 상태가 됩니다. 주변 풍광을 보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달리는 두 다리와 심장이 느껴질 뿐입니다. 이런 느낌이 너무 좋아서 자꾸 뜁니다. 

사실 저는 달리기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지금까지 좋아해본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 꽤나 잘 달려서 계주선수로도 활약했는데, 그때도 중장거리 달리기는 매우 싫어했습니다. 달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왜 달리지?’ 그 생각을 늘 했습니다. 숨 차오르는 그 힘든 걸 왜 할까,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제가 달릴 때는 딱 두 경우입니다. 약속 시간에 늦었거나, 엄청나게 화가 났거나. (화날 때 달리면 분노가 좀 녹아들더군요.) 


그런데 나이키의 창업주 ‘필 나이트’의 자서전을 읽고나서, 달리기에 대한 생각이 조금 아니 많이 달라졌습니다. 필 나이트는 제가 좋아하는 사업가 중 한 명인데요, 그가 쓴 <슈독>이란 책을 보면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나옵니다. 그는 대학시절 육상선수로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늘 다른 선수의 등을 보며 달려야 하는 만년 2등이었죠. 그는 선수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진로를 달리기에서 회계로 바꿉니다. 하지만 달리기에 대한 열정은 어찌할 수 없어 매일 달립니다.  달리기를 너무 좋아해서 처음 시작한 사업도 ‘운동화 판매’였습니다. 나이키 광고를 보면 제품에 대한 설명은 없고 위대한 선수들에 대한 찬양이 가득합니다. 실제로 필나이트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달리기를 사랑하고, 선수들에 경외심을 품고, 뭐든 ‘Just do it’ 정신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는 달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잊어버려야 한다. 자신이 품었던 의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자신의 고통과 과거를 잊어버려야 한다. "이제 그만하자"는 내면의 외침, 애원을 무시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거나 떨쳐버리거나 무시하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과 타협해야 한다. 육상 경기 도중에 내 마음이 원하는 것과 몸이 원하는 것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나는 내 몸에 이런 말을 하곤했다. '그래, 너 참 좋은 의견을 내어놓았구나. 하지만 그래도 계속 달려보자.'"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을 때 몸에게 한 말, 이게 무척 멋져 보였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달리기’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왔던 것 같습니다. 필 나이트는 그 뒤로도 사업에 고비를 맞을 때마다 달리기를 하며 믿음을 놓지 않았고,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그렇게 20년 넘게 견뎌내며 지금의 나이키를 만들었죠.  


저는 올해 39살이 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 게 있습니다. 제가 19살 때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전여행을 했었는데요. 별 의도없이 시작한 그 일이 제게 엄청난 경험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 경험이 지난 20년간 저를 지탱해준 가장 큰 힘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올해 다시 한번 그런 경험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지난 20년을 19살의 경험으로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의 20년은 39살의 제가 만들기로요.  


그리고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게 이 ‘달리기’였습니다. 며칠 전 발견한 건데, 걷는 것과 달리는 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걷는 건 생각을 촉진하고 연결해주는 데 특효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막힐 때,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걸으면 좋습니다. 그런데 달리는 건 생각을 정리하고 머리를 비우게 만듭니다. 달리는 동안 누군가가 내 머릿 속에 ‘생각용해제’를 뿌리는 것처럼, 꽉 차있던 생각들이 아이스크림 녹듯이 녹아져버립니다. 수많은 생각들로 피곤해질 때 달리기를 하고나면 맑아집니다. 


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맨날 글을 쓰고 맨날 달리기를 하는지, 뛰어보니 알 것 같습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 특히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은 반드시 걷고 달려야 합니다. 그렇게 몸을 써주지 않으면 정신이 온통 생각에 사로잡혀 먹혀버릴 수 있습니다. 몸을 써야 생각이 빠지고, 생각이 원활하게 흘러갑니다. 하루키도 글쓰기 위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말에 하루키가 이런 답을 합니다. 


"사실 달리다보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공백을 얻기 위해서 달리는 거죠."

'작가, 그리고 러너'라는 묘비명을 남기고 싶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인터뷰가 실린 '러너스 월드' (2005년 10월 3일자)

그는 자신이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쓰는 작품이 지금과는 다른 작품이 되었을거라고 말합니다. 묘비명을 ‘작가이자 러너’ 남기고 싶다고까지 할 정도로 달리기를 사랑합니다.  저 역시 달리기를 평생 습관 목록에 올려두었습니다. 현재 그 목록엔 글쓰기, 코칭, 걷기가 있습니다. 


이제 달린 지 두 달이 되었는데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스름해지면, 벌써 기분이 좋아집니다. 큰 맘먹고 산 쿠션 좋은 러닝화를 신고서 나갑니다. 귓가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울려퍼지고, 시원해진 공기가 반갑게 맞아줍니다. 가볍게 몸을 풀고 하낫 둘, 달려나갑니다. 몸이 아래위로 통통 바운스되고, 심장은 쿵쿵, 뜀박질합니다. 머리 속은 텅 비워집니다. 주변 풍광이 천천히 사라지며 이 우주에  몸만 남은 기분이 됩니다. 그 상태에서 온전히 두 다리와 몸에 집중하며 달립니다. 세상을 내 뜻대로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옵니다. 달리는 한 나는 괜찮을 것이다란 근거없는 자신감도 뱃속에서 요동칩니다. 


아 이러니, 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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