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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Apr 08. 2022

이 길이 내 길일까? 묻고 있다면

Flow with life 삶과 함께 흐르기

Flow with life 삶과 함께 흐르기 


'호시노 토미히로(星野富弘)'라는 일본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전신이 마비되어 입으로 붓을 물과 꽃의 그림과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가 사고를 당한 건,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선생님이 된 지 불과 두 달 만의 일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공중제비 시범을 보이다, 목부터 떨어지게 되는데 이 어이없는 사고로 하루아침에 전신이 마비됩니다. 그 후로 스스로 식사나 용변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내가 그런 사고를 당한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말하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입니다. 호시노는 9년동안의 오랜 입원 생활을 하면서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쓴 [내 꿈은 언젠가 바람이 되어]라는 시화집은 200만부나 팔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다음은 그가 쓴 글 중 한토막입니다.    


나는 어릴 때, 집근처에 흐르는 와타라세 강에서 소중한 것을 배웠다. 

내가 겨우 헤엄을 칠수 있게 되었을 무렵이니까, 초등학생 때였을 게다. 개구쟁이들과 어울려 와타라세 강으로 헤엄을 치러 갔다. 그날은 물이 불어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살도 빨라서, 큰애들은 건너편 강기슭에 있는 바위까지 헤엄쳐 갈 수 있었으나, 나는 겨우 개헤엄이나 치는 정도였기 때문에 얕은곳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새 강 한가운데로 너무 들어가 버렸는데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있었다. 내가 있던 강기슭으로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물살이 점점 더 빨라지고 친구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빠른 물살에 휩쓸려버둥거리다가 얼마나 물을 들이켰는지 모른다.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언제나 바라보던 와타라세 강의 모습이었다. 

 군데군데 푸르스름하게 보일 정도로 수심이 깊은 곳도 있지만 흰 거품을 일으키며흐르는 얕은 여울이 많았다. 아마 지금 내가 휩쓸러 가고 있는 곳은 내 키보다 깊지만, 물살을 타고 흘러가다 보면 반드시 얕은 여울이 나타나게될 것이다. 


“그래. 굳이 되돌아가려 하지 않아도 되잖아.”  


나는 몸의 방향을180도 틀어서 이번에는 하류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렇게 빠르게 흐르던 물살도 어느새 날마다 바라보던 와타라세 강으로 되돌아 가있었다. 하류를 향해 얼마 동안 흘러가다가 발로 강바닥을 짚어 보았더니 그곳의 깊이는 이미 내 허벅지에도 차지 않았다. 물살에 휩쓸려떠내려가던 때의 무서움보다는 그 무시무시한 물살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는 기쁨에 나는 가슴이 벅찼다. 


부상을입고 전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앞날에 대해서나 지난날에 대해서 생각하며 괴로워하다가, 문득 급류에 떠내려가면서도 본래 있던 강기슭으로 헤엄쳐 가려고 발버둥치던 내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굳이 거기로되돌아가지 않아도 되잖아.... 휩쓸려 내려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 무렵부터, 나를 지배하던 투병이라는 의식이 조금씩 옅어져 간 듯하다. 걷지 못하는 다리와 움직이지 않는 팔만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면서 살아가자고 마음먹게 된 것이다.    

- 글 "하류로 가다" 중


토미히로씨는 오랜 입원생활을 하며, 장애라는 느닷없는 재앙이 사실은 우주의 온전한 질서속에서 이뤄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장애마저 자신의 삶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되죠. 그는 지금도 시와 수필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호시노 토미히로의 그림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가. 


가끔 두려워질때가 있습니다. 내가 잘 가고 있는건지, 혹은 잘못 가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그러면 살만하던 인생이 갑자기 불확실해지고, 모든 게 불투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느낌이 찾아오면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위안받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그게 도움이 될까요? 호시노 토미히로씨는 <낙엽>이라는 시를 통해 이렇게 이야합니다. 


아프면 아픔 속을

외로우면 외로움 속을 걸어가자. 

위로만 향해 있는 얼굴 위에도

움직이지 않는 손을 둔

이불 위에도 

어디까지나 계속되는 넓은 길이 있다 

꿈분석학자 고혜경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잘못된 길은 없습니다. 오직 내 본성에 어긋난 길만이 잘못된 길이죠." 사실 어느 누구도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틀린지 이야기해줄 수 없습니다. 그건 내 인생인거고, 내 느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죠. 


'내가 잘못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면 일단 조용히 앉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이 길이 내게 어떤 의미인가, 어떤 느낌으로 내가 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어떤 상황이든 3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떠나거나, 바꾸거나, 받아들이거나' 떠나야 하는데 떠나지 못하고, 바꿔야 하는데 바꾸지 못하고 그러면서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됩니다. 만약 아무리 생각해도,'이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한번  와타라세 강에서 하류를 향해 흘러가던 한 소년의 말을 떠올립니다.   


“그래, 굳이 되돌아가지 않아도 되잖아.... 휩쓸려 내려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야.” 


인공위성에서 가장 연료가 많이 드는 일은 '궤도를 잡는 일'이라고 합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응하며 자신의 궤도를 계속해서 수정하며 잡아가는 일은 한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내내 계속 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도 자신의 궤도를 수정하고 다시 그려가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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