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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Apr 01. 2022

기차가 들어오기전에 철길부터 놔버린 동네

진짜 기다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이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사이 알프스 지역에 세머링이란 곳이 있습니다.
경사가 아주 가파른 곳인데 사람들이 거기에 비엔나와 베니스를 잇는 철길을 만들었지요. 기차가 다니기도 훨씬 전에 철길부터 만든 거에요.
언젠가는 기차가 들어오리란걸 알았기 때문이지요.“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2003)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 대사를 친 사람은 상대에게 "그러니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라."고 덧붙입니다. 대사의 내용이 흥미로워 이게 진짜일까, 찾아봤습니다. 진짜더군요.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한번 볼만한 영화입니다.


철도가 들어오기도 전에 철길을 놓아버린 동네


‘세머링 Semmering’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의 알프스 지역에 있습니다. 대협곡지역으로 중세때부터 비엔나에서 이탈리아 아드리아해까지 잇는 중요한 무역로 중 하나였습니다. 길이 워낙 험하고 경사가 가팔랐지만 주요통로였기 때문에 오랜세월 동안 사람들은 죽기살기로 이곳을 통과해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엔나와 베니스를 잇는 철도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세머링 철도 노선도 (이미지출처: 다음블로그 johnkchung)

어찌나 그 소망이 강렬했던지 이곳 사람들은 증기기관차 기술이 첫 선을 보이기도 전에 선로공사를 시작합니다. 1848년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커다란 산맥을 지나야하는 만큼 너무나 위험해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처음에는 인부를 사서 하다가 나중에는 2만명의 군대를 동원해 공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험한 산을 통과해야했기 때문에 1미터를 지나갈때마다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야 할 정도였고, 높은 고도에서 진행하다보니 온갖 첨단기술이 다 동원됩니다. 엄청난 규모의 공사로 유럽 전역의 관심을 받으며 진행되면서 세머링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때아닌 관광붐이 일었고 덕분에 호황을 맞이했다고 하더군요.


공사는 6년 뒤 1854년에 완공되었습니다. 41km구간에 14개의 터널이 건설되었고 고가철도는 무려 16개가 만들어졌습니다. 세머링 철도는 전세계 철도중 가장 높다고 하는데 평균고도가 해발 460미터입니다. 거의 공중에 떠서 가는 기차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치 놀이공원에서 기구를 타는 것처럼 스릴 만점이라고 합니다. 이 선로가 완공될 때쯤 비로소, 증기기관차가 본격 선보입니다. 


완공된 세머링 철도 (이미지출처: 다음블로그 johnkchung)


기회는 준비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찾아가는 법


증기기관차가 첫 선을 보이기도 전에 미리 철길부터 놓아버린 곳, 세머링. 세머링 철도는 지은지 1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문제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럽 최초의 산악철도로, 죽기 전에 봐야할 세계 역사 유적으로도 꼽히며 철도로는 최초로 1998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세머링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준비하며 기다렸고, 결국 소망대로 철길을 놓게 됩니다.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 하지만 이때의 기다림은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그 때가 올 것을 믿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는 기다림입니다.


기회를 뜻하는 영어단어 ‘오퍼튜너티 Opportunity’에는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기회’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단어엔 ‘포트 port’가 들어있는데, 이는 항구를 향해 자신을 움직여간다는 의미입니다. 무작정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움직여 기회를 쟁취하는 적극적인 기다림인 것입니다. 공자가 기다림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내는 참는다는 자의식을 동반함으로써 고통이 따르지만,
기다림은 참는다는 자의식 없이 견딤으로써 인격을 완성시킨다."


그를 잘 보여주는 게 나무죠. 겨우내 헐벗은 나무는 겨울을 인내하는 게 아니라 봄을 '기다림'으로써 꽃을 피웁니다. 어제 마침 개나리 꽃봉우리가 터져올랐더군요. 그를 보면서 공자의 말과 투스카니의 태양의 위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아, 이 녀석들은 추운 겨울을 견딘 게 아니라 봄을 기다린 거구나. 


아무리 좋은 뜻을 품고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가 오리라 믿고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기다린다면, 결국 기회는 그런 사람에게 찾아갈 겁니다. 4월 첫 날입니다.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내게 어떤 일이 몰려오고 있는 중일지 모릅니다. 그를 기뻐하며 맞이할 수 있게 단단히 준비하며 기다리고 싶어지는, 그런 봄날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기다림을 준비하고 있으신가요?




**참고**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2003)

책 <운의 속성>, 스기우라 마사카즈, 흐름출판, 2021

블로그 <젬머링 철도> https://blog.daum.net/johnkchung/6826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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