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중 미술가가 말하는 창작론
저는 ‘창작’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창작은 예술작품을 독창적으로 만들어내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걸 말하죠. 그래서 가끔 예술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지 찾아봅니다. 그러다 강익중이라는 걸출한 미술가를 알게 됐습니다. 그가 말하는 창작론이 흥미로워 여러분과도 나누고자 합니다.
강익중 작가는 3인치의 예술, 달항아리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60년 청주에서 태어나 84년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뉴욕으로 떠난 이력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온갖 일을 하며 세상을 관찰하다, 자신이 본 것을 손바닥만한 캔버스 위에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수 천 장의 그림을 그리고 나니, 뉴욕이 그를 알아보기 시작하고, 곧 국내외에서 그를 찾기 시작합니다. 현재 강익중 작가는 설치미술가로서 미국 화단에서 맹활약하며, 백남준 뒤를 잇는 가장 기대되는 유망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 실력이 뛰어나서 곧잘 상을 타곤 했다고 합니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에 미쳐 살았고,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잠을 줄여가며 그립니다. 그림이 그리고 싶어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였다고 고백하죠. '내가 세상에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생각으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곳에서 진짜 천재들을 만나면서 많은 좌절을 겪습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미술가로 먹고 살기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교수가 되기는 더 어려울 것 같고 해서 도피하다시피 떠난 게 뉴욕입니다.
그곳에서 온갖 허드레일을 하며 3년을 보내다, 직장과 집을 오가며 관찰하는 것을 3*3인치 손바닥만한 종이에 그리기 시작합니다. 굳이 손바닥 만한 종이에 그리는 이유는, 가장 눈을 적게 움직이며 게으른 상태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게 그 정도 크기였다고 합니다. 첫해 1천 점을 그리고 그 다음 해 2천 점을 그립니다. 그쯤 되니까 그림 그리는 일이 쉬워졌고, 어떤 때는 생각보다 손이 앞서서 그림을 그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되는대로 무조건 그리면서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다시 찾았죠. 강 작가는 말합니다.
"그때 알게 됐다. 그림은 고민해서 그리는 게 아니라는 걸. 그림 그리는 자체를 즐기고 그저 그리면 된다는 걸.“
그래서 그는 '시험이 없어도 공부하는 학생, 전시 없어도 그림 그리는 작가, 그들이 진짜 학생이고 진짜 작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말하는 그림 잘 그리는 비결은 이렇습니다. "못 그려도 그리고, 기뻐도 그리고, 배고파도 그리고, 졸려도 그리고, 누워서도 그리고, 뛰면서도 그리는 것" 즉, 숨쉬는 모든 순간에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강익중 작가는 설치미술가인데요, 그에게 설치미술이 뭐냐고 물으면 자신도 모른다고 답합니다. 설치미술을 굳이 설명하자면 '큰 규모의 미술작품'이라는 것. 특히 공공미술은 대중과의 소통에 가장 큰 무게를 두기 때문에 소통과 책임을 고민해야한다고 말하죠. 그는 공공미술이 ‘혁명과 닮았다’고 말합니다. 왜 하는지 명분이 필요하고, 그를 이끌 리더(작가)가 있어야 하고, 공감할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는 공공미술을 통해 ‘순수하고 당당한 기운, 누구에게나 기쁨과 희망을 가지는 미술’을 전하고 싶어합니다.
그런 그가 정의하는 성공은 이렇습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정직을 바탕으로 자기 일에 대해 최대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이름을 남기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 작가가 되는게 목표라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처럼 돈과 이름에 연연해하는 사람이 보기엔 정말 대단한 경지거든요. 강익중 작가는 미국에서 활동하지만 그냥 한국식 이름을 고수합니다. 호를 지었는데 재밌게도 '그냥'입니다. 그냥 강익중. 재밌죠?
후배 미술가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냐고 하자, ”무엇보다 안테나를 안으로 세우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은 관심사가 밖에 있지만 창작하는 사람들은 안테나가 안으로 서야한다는 것이죠. 내가 누구인지 나에게 주파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모든 창작은 나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아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나를 안다는 건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지를 안다는 것과 같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른다면 경제력은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래서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자신을 아는 것'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하다."
그의 인터뷰를 여러 개 찾아보면서 느낀 건, 그는 자신의 일로서 도道를 닦고 있다는 겁니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보여요. 일을 생계수단으로 삼지 않고 도를 닦는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면 저도 모르게 찬탄을 하게 됩니다. 신발에 미쳐있었던 나이키 창업주 ‘필 나이트’가 그랬고, 변화에 미쳐있던 ‘구본형’ 선생님이 그렇습니다. 그림에 미친 ‘강익중’ 작가도 그 중 하나죠. 이들을 보면 도를 닦는다는 게 꼭 산에 들어가거나 명상을 하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일상을 잘 살아갈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해 최선을 다할 때, 그때 얻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참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도道를 닦는다’는 건 길을 만든다는 의미와 통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 일이 내 길을 열어주는 법입니다. 강익중 작가처럼요.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라이프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제 삶의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저는 누구나 자기 삶의 예술가이자 작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루씩 살아가며 내 삶을 만들어가고, 일상을 창작해가는 라이프 아티스트들이죠. 내 삶을 만들려면, 내 일이 길을 만들어주려면 강익중 작가의 말처럼 나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거기에서 모든 창작이 시작하니까 말이죠.
오늘 하루,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내 안으로 안테나를 세워두시면 어떨까요? 모기만한 소리라도 주파수를 맞추고 또 맞추면 어느샌가 또렷해질 것이고, 그 소리가 내 길을 인도해줄겁니다. 그 길이 어딜지, 한번 따라가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 참고
네이버디자인, "설치미술가 강익중" (총 4편의 인터뷰 글이 있음)
주간경향, 권민주의 작가와의 대화 "강익중- 이름을 남기는 일에 연연하지 않고 싶다"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2106181521111&code=